대혼돈의 대한민국 라이프
* 마블 시리즈를 보면서 느낀 바를 적기 때문에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진의 출처는 구글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마지막 부분에 스티븐은 웡에게 행복하냐고 질문한다. 우주를 지키는 영웅들에게 다소 생뚱맞은 질문이다. 웡 자신도 처음 듣는 질문인지 조금은 어색해한다. 누구에게도 그들에게 물어보지 않았던 질문. 행복해? 거대 담론을 포함한 마블 시리즈는 상업영화지만 알고 보면 매우 철학적이다. 그 안에 들어있는 그 철학을 이해하면서 보면 사실 더 재밌는 게 마블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그중에서도 모든 시리즈를 관통하고 있는 최고의 철학. 그 한 가지를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모든 마블 시리즈의 영웅들은 자아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할 것 없이 모두가 동일한 자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자신의 삶과 영웅으로서의 삶에 대해 고뇌한다. 그래서일까. 캡틴 아메리카가 시공간을 넘어 늙어버린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울컥했다. 그리고 그렇게 영웅의 길이 아닌 한 여자의 남자로 남는 길을 선택한 그가 진정한 영웅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 이 영웅물은 알고 보면 누구나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이고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 자신이 가장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아무리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라고 할지라도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 그런 그들을 변함없이 지지하며 사랑해줄 수 있는 유일한 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세계적으로 엄청 흥행한 이 시리즈물이 고작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김이 빠질지 모르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게 제일 어렵다. 과연 우리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평균적인 세상에 살고 있는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과 알고 지내는 게 이제는 너무 피곤하고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의 폭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피하게 됐다. 다행히 여전히 내 주변엔 그래도 꽤 많은 자기애가 충만한 사람들이 있다. 제주도에 가면 만날 이웃이 많고, 육지에도 더러 있는 편이다. 이미 충분하고 넘쳐서 더 이상의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는 것은 나에게 사치고 낭비다. 나는 그런 나를 종종 스스로 왕따 시키고 있다고 표현하곤 한다. 하지만 전혀 외로움을 못 느낀다. 혼밥을 좋아하고 혼자 시간 보내기를 좋아하고 누구를 위해 바이올린을 배우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배우고, 나를 위해 피아노를 치고, 나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나를 위해 글을 쓴다. 브런치의 모든 글이 자기만족인 것이다.
장마가 한창 올 거라고 뉴스에서 열심히 떠들었지만 제주도는 짧은 비와 그로 인해 더할 나위 없이 반짝이는 하늘을 선물로 주었다. 자기애가 충만한 아내는 고장 난 차로 스트레스받기보다 올레길을 걷는 쪽을 선택했다. 올레길을 걸으며 파란 하늘과 하얀 포말이 일어나는 제주 바다와 어울리는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도 예뻐 보였는지 열심히 셀카를 찍어 보내준다. 사진 속의 아내는 빛나고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그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더 예뻐 빛이 난다. 제주를 닮았다. 제주도에 사는 모든 과정이 자기애를 실천하는 과정이었다. 특별분양, 생애 첫 주택, 부동산 계층 사다리의 온갖 유혹을 떨쳐내고 다른 사람들의 말 대신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우리 마음이 가라 하는 곳으로 나아갔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땅을 향한다. 흙으로 빚어졌기에 그 속성 자체가 땅이다. 그런 인간이 땅을 갈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다. 하지만 높은 아파트 꼭대기로 오르려는 사람들을 보며 과연 그들이 진정 자기 자신의 욕망으로 그 높은 곳을 오르려 하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없기에 타자의 욕망을 욕망할 뿐인 현대 사회를 보며 마음이 아프다.
마블 시리즈의 영웅들은 위대한 영웅들이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세상이 왜 지켜 마땅한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도 그 삶을 누리길 소망한다.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고,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이 평범하지만 위대한 여정이 오히려 더 힘들고 그들에게는 사치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영웅들이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는 세상에서 이미 영웅들조차 부러워하는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무엇이 더 필요한가. 그저 우리는 나 자신을 사랑하며, 그 마음으로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함께 지내면 될 터인데.
스타크는 자신을 3,000만큼 사랑하는 딸을 두고 가야만 했다. 그의 선택은 끝내 가족이지 못했다. 참으로 위대한 영웅의 쓸쓸한 퇴장이다. 스티븐은 크리스틴과 행복하게 사는 삶을 온 우주를 뒤져서도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나타샤 역시 자신의 동료가 가족들에게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에 자신의 몸을 보르미르 골짜기에 던졌다. 반면에 가족들에게 돌아간 영웅들도 있다. 배너는 헐크인 자신도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분노하지 않은 헐크로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 호크아이 역시 가족들에게 돌아간다. 위에 언급한 캡틴 아메리카 역시 페기와의 삶을 선택했다. 여기서 나는 최악의 빌런이 되어버린 완다 막시모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던 자기애를 완전히 상실한 사람이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빌런이다. (타노스도 그런 면에서 우주를 위한답시고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모든 과정에서 알고 보면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고 사랑하지 못했던 - 그 자신에게 조차도 - 자의 끝이 어떤지 보여주는 빌런이다.)
스칼렛 위치는 엄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이 너무 절박하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어 가면서까지 세상을 구했지만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딘가 다른 우주에 있을 그녀의 자녀를 자기가 직접 사랑하며 키워야만 한다고 모든 우주를 들쑤신다. 그녀에게 묻고 싶다. 과연 그녀는 그녀 자신을 사랑하긴 한 걸까. 완다는 어린 시절 잠깐의 행복했던 가정사를 일찍이 종료하고 불행과 고통의 연속인 삶을 살았다. 그 과정에서 생각도 마음도 제대로 크지 못한 채 분노만을 키웠다. 그래서 실제 인간이 아닌 로봇인 비젼을 사랑한 게 아닐까. 누군가 불멸하지 못하는 존재를 사랑하면 반드시 이별이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스스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사랑받아야만 그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는 집착. 엄마라는 위대한 단어 뒤에 숨어 사실 알고 보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열등을 끊임없이 숨기려 했던 존재. 그녀의 집착은 결국 멀티버스에 대혼돈을 가져왔다. 심지어는 다른 우주의 그녀 자신으로부터 자녀를 빼앗기에 이렀다.
어찌 보면 다행히도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 깨닫는다. 하지만 그녀의 깨달음 뒤에 그녀는 끝내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만다.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고 사랑할 수 없었기에 다크 홀드를 없앴다는 핑계로 자폭해버리는 선택은 그렇게 아름다운 마무리는 아닌 것 같다. 어찌 보면 세상을 구하기 위해 가정을 포기해야 했던 토니 스타크의 마지막이 얼핏 보이기도 한다. 장교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도 비슷하다. 내가 지키고 있는 것은 사실 실체는 없는 것들이다. 국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와 같은 가치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국군의 사명이라고 하니 재산이라고 하는 것이 어느 정도 실체가 있을 수 있지만 사실 그마저 정확한 실체로 존재하는 재산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장교로의 삶은 끊임없이 도구로 존재하길 바라는 국가의 요구와 그 자체로 목적인 인간으로서의 내 삶이 부딪히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군인은 더욱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고 자기가 어떤 일을 하는지 그 의미를 깨달아야만 하겠다.
현란한 화면과 통쾌한 격투씬들이 돋보이는 상업 영화의 최고봉 마블 시리즈는 사실 알고 보면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이 진리를 전하고자 그 많은 예산을 들여다가 그 화려한 영상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더해서 그런 모든 자극들 속에서 그 작은 진리. 나 자신을 사랑하자를 찾아낼 수 있는 여정 자체가 세상에 던져진 우리와 닮았다. 우리의 삶 역시 자극적이고 너무 현란하여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없는 구조다. 그런 세상 속에서 나에게 귀 기울이고 나를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기적이고 감사한 일이다.
내 명함에는 행복전도사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 행복을 전한다는 것은 사실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처음으로 돌아가 스티븐이 받았던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 했던 그 질문. 행복해? 그 질문의 답은 내가 내주는 것이 아니다. 그 질문을 받는 그대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것이 나의 행복을 전하는 방법이다. 오늘도 나는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웃으며 질문을 던진다.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