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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okie May 23. 2023

초코렛 향이 나던 내 첫사랑(?)

'오하니' 작가의 책 'Iloveperfume'을 읽으며...

고디바 초코릿의 향은 그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그를 존재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향이 바람을 만나 소녀에게 와주었을 때, 그를 좋아하는 한 소녀의 때묻지 않은 감정과 기억을 그대로 불러 일으켜 주었다.


[송파 '라오크' 향수공방에서 직접 향수를 제조한 날]

저번 주 목요일에 향수 공방에 갔었다(이번 달에 한국으로 오랜만에 놀러온 사촌동생이 공방에 놀러가보고 싶다고해서 같이 갔다). 그 곳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선물할 생각으로 내가 좋아하는 향 + 그 친구한테 어울릴 만한 향을 고려해가며 향수를 제조했다. 다양한 향을 맡아가면서 어느덧 후각의 신경에 마비가 올 때쯤, 문득 향으로 사람을 기억했던 2010년의 어느 날이 기억이 났다.


2010년, 나는 미국 보스턴에 있는 고등학교에 재학중이었다. 대한민국은 2학기인 반면, 미국은 3학기로, Fall/Winter/Spring… 그리고 긴 여름방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당시의 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 한번 못 걸고.. 마음 하나 표현하지 못하는 개찐따였다… (당연하게도 10대 내내 모쏠이었다)


미국은 매 학기마다 방과후 운동을 하는 것이 필수였다. 2010년 겨울 학기에 나는 방과 후 할 운동으로 Winter Track(육상)을 골랐다. 그 때 당시에 육상부 주장인 “크리스”라는 친구가 있었다. 백인, 갈색눈, 곱슬머리..(묘사를 하자면 그정도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얼굴도 기억이 안남) 항상 묵묵히 성실하게 팀을 이끌던. 나보다 2학년이 높았던 친구였다. 주변을 살뜰히 챙기고 뒤에서 팀원들에게 동기부여를 열심히 해주면서도, 전혀 티를 내지 않던 그 모습에 어느 순간부터 나는 마음이 갔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 한번 걸 용기 조차 없었던.. (말 걸 생각만 해도 얼굴이 빨개지던) 만 16세 소녀였기에… 


그렇게 말 한번 걸지 못하고 기나긴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미국의 여름방학은 약 3달 반 정도이다. 여름동안 대한민국의 땅을 밟았던 나는 좋아하는 마음을 두고올 줄 알았건만… 이게 웬걸, 그에 대한 그리움은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증폭되었던 듯?


여느 때와 다름없게 나는 집에서 쉬면서 고디바 초코렛을 먹으려고 껍질을 뜯고 있었다. 

근데 웬걸? 그 초콜릿에서 “크리스”의 향이 나는 것이 아닌가? 비슷한 것도 아니었다. 완전 똑같았다. 


고디바 초코릿의 향은 그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그를 존재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향이 바람을 만나 소녀에게 와주었을 때, 그를 좋아하는 한 소녀의 때묻지 않은 감정과 기억을 그대로 불러 일으켜 주었다.


그렇게 16세의 소녀는, 용돈을 받으면 현대백화점으로 달려가 그의 기억을 불러일으켜주는 고디바 초코릿을 여름방학 내내 사먹었다… (tmi : 고디바 초코렛은 매우 비싸서.. 당시 매우 돈을 아껴 사먹었던 기억이…) 


그리고 오랜시간 그 향을 맡으며, 그에 대한 그리움과 보고싶은 감정을 달랬다…


벌서 13년 전의 일이라 그의 얼굴도 가물가물하지만, 바닐라 향이 베이스였던 그 고디바 초코렛의 향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향은 때묻지 않았던 나의 어린시절의 모습과 감정, 그리고 기억을 떠올리게 해준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 한마디 걸어보지 못하고, 고디바 초코렛의 향을 통해 그리운 마음을 달래며 1년간 순수한 마음만 품었던 16살의 소녀는 어느새 30살이 되었다. (이제는 관심이 가면 말 한번 거는 건 매우 쉽다 ㅎ) 말 한번 걸지 못했던 과거의 나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 한편으로는 마냥 순수하게 존재해주었던 내가 고맙다.


그래도 만약, 과거의 나를 마주할 기회가 생긴다면, "말 한번쯤은 걸 수 있잖아!" 라고 격려해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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