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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런 Aug 20. 2020

출발

몸을 쓰기 시작한 집순이


2020.6.23 드디어 아침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이유인즉,

띄엄띄엄 왔다가는 장맛비 덕에 미세먼지가 좋아졌고, 낮의 폭염이 무색하게 아침 공기는 시원하고, 많이 걸으면 만보기 어플로 까까를 바꿔 먹을 수 있으며, 산책로 중간에 있는 도서관에 책도 반납해야 하는 데다 , '엄마는 커서 돼지가 될 거냐'라고 아이가 물었기 때문이다.

이 조건들이야 항시 갖춰져 있었는데 무시하며 잘 살다가 왜 갑자기 변심했냐 묻는다면 몸이 예전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대체로 마른듯한 보통 체격을 유지해왔었다. 술과 야식 등 먹고 싶은 것을 제한하지 않고 마음껏 먹어도 체중의 변화가 크지 않아 체질이 준 축복으로 굳게 믿어왔다.  그런데 40대에  들어서면서 많이 먹는 것도 아닌데 점점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주량이 예전의 절반으로 줄었고, 술 마신 뒤 라면으로 마감하던 패턴도 소화력이 떨어져 마다하던 차에 몸무게는 되려 치솟고 있으니 억울하기까지 했다. '성령으로 잉태했냐, 이거 어쩔 거냐' 짝꿍과 배를 꼬집으며 장난을 치긴 했으나 안도의 임계치에 다다른 것을 불안하게 직시하고 있었다.


기초대사량과 나잇살에 대해 실질적으로 고민하게 된 것은 한 사이즈 큰 걸로 교환하고 나서야 들어가는 새 꼬까 바지를 맞이한 직후였다. 빨래 건조대에 나부끼는 그것이 그리 커 보일 줄이야... 

마음이 아팠다. 위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파 서러운데 바지가 거대한 깃발 같아서 더더욱 쓰라렸다. 그래서 운동하기 싫은 오만 가지 조건을 되새기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냥 신발을 신고, 그냥 마스크를 쓰고, 그냥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나처럼 굼뜬 인간은 심각하고도 복합적인 원인과 잔잔한 마음에 이는 토네이도 정도는 있어야 변화가 시작된다. 그런데 지금 한낱 깃발 같은 바지가 시발점이 되다니 왜 전쟁과 혁명의 기운에 깃발을 선두에 세우는지 순간 이해가 된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왜 배우는지 몰랐던 말장난 같던 시가 이제야 곱씹어진다.  


집 밖을 나오자마자 신록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아침햇살에 가슴이 벅차 순식간에 기뻐졌다.

내가 주로 산책하는 늦은 오후 산책자들의 여유로운 걸음걸이와는 달리 아침 산책자들은 힘찬 기운으로 질주하는 느낌이 강했다. 둔한 몸뚱이에도 강한 에너지가 들어갈까 싶어 그들을 따라 속력을 내고 팔을 조금 더 흔들었다. 평소에는 주변 생물과 무생물들을 두루두루 훑어보며 어슬렁어슬렁 걸었다면  오늘은 오직 나의 체온과 숨결, 발바닥, 허리와 골반, 팔, 땀나는 피부를 지각하며 걸었다.


평소 1시간이 넘던 산책 경로가 30분 만에 끝이 났다. 도서관을 들러 책을 반납하고 돌아오니 door to door로 40분, 5000여 걸음이 조금 넘었다. 오랜만에 투혼을 발휘했으나 지치지 않는다.

조금 더 걸을까 싶었지만 일용할 양식을 만들어 먹여야 할 꼬맹이들을 생각해 집으로 돌아왔다.

이 열의, 내일도 기억할 수 있길...


잎사귀와 공유하는 구슬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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