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오랜만에 집에 놀러 온 친구와 브레드 앤 버터 앤 초콜렛으로 밤 늦게 마무리를 했더니 아침 상태가 말도 아니었다. 온몸이 덜 깬 상태였지만 '그래도 금요일이야!'라고 위안을 하며 출근길에 나섰다. 오늘은 정말이지 커피 말고 아무 것도 먹기 싫은 아침이었지만 앞 자리 팀원에게 날 지 모르는 꼬르륵 소리를 감추기 위해 에그타르트로 요기를 했다. 회의와 업무로 꽉 찬 하루, 틈날 때마다 알아두면 쓸데 있는 '오늘은 뭘 먹을까, 내가 뭔가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상태일까'와 같은 생각들을 끼워 넣다가 저녁시간이 되었다. (점심은 살기 위해 먹었다.) 이렇게 아무 빵도 못 먹고 오늘을 마칠 순 없어! 최근에 저장해 둔 먹고 싶은 리스트를 꺼내보았다. 그래 뭔가 좀 맛있는 빵을 먹고 싶다, 조금은 밥이 되면서도 달콤하고 짭쪼름한 무언가? 맛있는 커피도 먹고 싶어. 그래! 가자!
얼마 전 새 소식 피드에서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아이를 만나러 갔다. 산미가 있는 원두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주문하고 메뉴가 완성되기까지 조금 걸릴 수 있다는 직원 분의 말에 네네 얼마든지요! 라는 제스쳐로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나의 지친 몸과 마음을 어서 달래주려는 듯 아름다운 요리가 금새 나왔다. 고소하고 달콤한 와플 위에 어린맆 채소와 햄, 계란과 끈적한 소스로 마무리된 "프로슈토 & 반숙 유정란 와플 플레이트". 반숙을 반으로 잘라 노른자를 깨고, 와플빵 채소 프로슈토 소스까지 발라 한 입에 쏙, 단짠단짠의 맛이 세상 조화롭게 내 어깨를 토닥였다. '어제 많이 달려서 피곤하지?' 인자한 엄마미소를 지으며. 아니다, 나 대학교 처음 들어가고 한창 신입생 환영회다 뭐다 술독에 담궈졌을 때 우리 엄마는 한심하게 혀를 끌끌 차셨었지.. 생각해보니 딱 그 때, 내가 와플을 진짜 많이 먹었었지.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와플 전문점이 정말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일단 학교 바로 근처에는 저렴한 가격에 와플과 생크림, 잼, 아이스크림 토핑 등을 선택해서 반 접어 손에 들고 먹을 수 있는 가게가 있었고, 좀 더 번화가로 나가면 접시에 와플이 펼쳐져 있고 과일, 휘핑크림, 아이스크림 몇 스쿱 올려서 먹을 수 있는 카페가 있었다. 이런 류의 카페들 중에 골목에 숨어 있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가게에 친구랑 공강을 틈타 거대한 와플 한 접시를 격파하고 오곤 했었다. 나와 친구는 와플에 심각하게 빠졌었고, 지금으로부터 무려 10년도 더 전, 와플 기계가 보급화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친구의 생일 선물로 나는 와플 기계를 사 주었고, 친구 두 명과 함께 과방에서 밤새도록 와플을 굽고 맥주랑 마셨던 와플의밤도 있었다. (엄마는 모르신다..)
미국식 와플의 유행은 어느샌가 유럽식 와플로 변화했고, 한 동안 어디서도 잘 찾아보기 힘들다가 얼마 전 부터는 크로플과 같이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와플과 곁들이는 메뉴들도 단순히 초코시럽이나 크림에서 벗어나 브라운 치즈나 브런치 형태의 메뉴들까지. 거의 이건 뭐 우리나라로 치면 밥에 치즈를 올리냐 제육볶음을 올리냐 비빔밥을 만드냐 수준의 진화인 것 같다.
"너 그러다가 죽도 밥도 못 된다?!"라는 햇반 엄마에게, "엄마, 난 죽도 밥도 안 될 거에요!"라며 밤샘 공부 끝에 '냉동고'에 입학하여 라이스크림이 되었다는 쌀알의 광고가 생각났다. 이보다 더 완벽한 스토리라인이 있을까, 감탄했었는데 오늘의 행복한 한 끼를 마무리하며 와플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생겨버렸다. "와플아, 그래서 넌 커서 뭐가 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