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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 Dec 01. 2022

[브레드 앤 버터 앤 초콜렛]

나는 몸이 차가운 사람이다. 어렸을 때 부터 몸이 찬 성격에 수족냉증을 달고 살았고, 특히나 한 때 몸이 안 좋았을 땐 음식을 가려서 먹어야 할 정도였다. 술은 그렇게 좋아하는 메뉴는 아니었지만, 성인이 된 이후 자연스럽게 마시기 시작한 맥주가 몸에 잘 안 맞음을 느끼고 멀리 하기도 했었다. 맥주를 멀리 하기에 소주는 맛이 없었고, 뭔가 조금 맛있는 술을 찾다가 와인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처음엔 정말 레드는 고기, 화이트는 해산물이라는 단순한 공식만 알고 있었다. 그렇게 와인을 먹다보니 '드라이'함과 같은 용어는 아직 어려워도 나의 취향에 맞는 와인은 생기기 시작했다. 


가끔 친구들과 와인을 마실 때 딱 맛있다! 싶은 와인이 있었고 사진을 찍어두긴 했지만 기억을 계속 할 만큼 이름이 쉽지도 않았고 열정적이지 않았다. 그렇게 이런 저런 와인을 마시던 중 빵순이인 나에게 잘 맞는 와인을 친구에게 추천 받았고 그 이름은 무려 '브레드 앤 버터'였다. 브레드 앤 버터 와인도 화이트와 레드가 있는데, 처음 접한 것은 화이트 버전이었다. 정말 이름 그대로 '버터'향을 머금은 듯 고소하고 달콤한 향기가 느껴졌고 맛도 이름 그대로의 맛이었다. "와 이거 진짜 너무 내 스타일이다" 라고 깨닫고는 누구를 초대할 때마다 이 와인을 찾아 선물하고 같이 나눠 마시게 되었다.


화이트 버전을 먹고 레드 버전의 브레드 앤 버터도 궁금했지만 왠지 화이트만큼의 감동은 아닐 것 같아서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고기와 함께여도 브레드 앤 버터 화이트 와인을 마시곤 했는데 오늘 오랜만에 초대한 친구가 와인 세 병을 들고 왔다. 향이 진한 와인들로 구성을 했다고 하는데, DUCKHORN과 KAIKEN, 그리고 브레드 앤 버터 레드 피노누아였다! 메인 메뉴를 고기로 했어서 레드로 라인업을 맞췄다는데 내가 빵을 좋아하니 브레드 앤 버터도 넣었다고. '레드는 이 정도의 감흥은 아닐 거야'라고 생각했던 나를 반성하며 고기와 함께 벌컥벌컥 들이키다가 갑자기 아껴 둔 초콜렛이 생각 나서 꺼내왔다. (브레드 앤 버터와 함께 할 브레드가 오늘 마침 없었다..)


초콜렛도 약간 사연이 긴 아이인데,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시국으로 빵과 디저트를 집에서 먹을 수 있는 여러 루트를 알아보고 있던 중, 올해 겨울이었다. 추운 날씨가 계속되었고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니 에디션 예약이 시작되었다. (나는 곳곳의 에디션을 거의 다 예약했었다..) 하도 많이 찾아보다 보니 팔로우 중인 해외 디저트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양에는 '크리스마스 캘린더'라는 문화가 있는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하루에 한 개씩 초콜렛을 먹는 전통이다. 나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서양 문화권에 있었던 적이 없어서 그 행복한 전통을 맛보지 못했는데 왠지 이번에는 용기가 나 버렸다. '직구로 살 수 있지 않을까? 날씨가 이렇게 추우니 뭐든 잘 보관될 것 같은데?'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부띠끄에서 크리스마스 캘린더와 크리스마스 한정 마카롱, 파운드 케이크, 초콜렛이 담긴 스페셜 박스를 주문했다. 집에 도착하기까지 비행기를 타고, 트럭을 타고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솔직히 그 박스 안의 디저트 중 한 두개만 멀쩡해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웬걸, 모든 디저트가 온전하게 도착했다. 정말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나의 디저트 친구 우리집 6살 언니와 하루에 한 개씩 먹으며 행복한 12월을 보냈었다.


한 번 성공을 하니 추운 날씨 동안엔 가능하겠다! 싶어서 2월이 되어 발렌타인 에디션도 주문했고 이 또한 무사히 도착했다. 마카롱은 진작 해치웠지만 초콜렛은 조금 아껴두고 있었는데, 이때다 싶어 꺼냈다. 고소한 프랄린이 더해진 달콤한 초콜렛와 향이 깊은 와인. 브레드 앤 버터 앤 초콜렛. 이보다 더한 조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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