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맨빵순이다. 빵순이도 아니고 맨빵순이가 무엇이냐고? 맨빵 그 자체의 맛을 즐긴다는 뜻이다. 식빵도 바게트도 사워도우도, 잼이나 버터 꿀 샌드위치 말고 그냥 빵으로만 먹는 게 제일 좋다. 겉바속촉 식감부터 고소하고 살짝 달콤한 그 맛과 향을 즐길 수 있어서다. 그래서 우리 집 냉장고에는 나를 위한 것은 없고, 6살 언니가 즐기는 블루베리잼과 남편이 즐기는 가염버터만 있다. 사실 치즈? 도 얹지 않고 살짝 토스트 해 먹거나 그냥 손으로 찢어먹기, 입으로 우걱우걱 베어 먹는 편인데, 맨빵순이어도 빵순이 성격상 또 신상은 한 번씩 맛보고 싶어지는 이 내 안의 다른 자아가 깨어난다. (흑후추가 살짝 더해진 파인애플 잼이나, 로즈마리향의 배잼)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정말 가끔 새로운 맛을 찾으면 어쩐지 오늘은 자극적인 맛으로 가득해 보이는 신선한 조합에 이끌려버렸다. 버터가 듬뿍 들어간 브리오슈 안에 직접 치댄 떡갈비와 모짜렐라 치즈를 넣은 토스트(with. 밤 잼). 아니 이 무슨, 맛있는 걸 모으고 모으고 한 데 모아 시골 엄마의 사랑과 프랑스 할머니의 손맛을 합친 조합인가?! (시골 엄마도 없고 프랑스 할머니도 없다)
두근두근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오픈된 유리창에 보이는 고소하게 빵 굽는 냄새라니, 오늘 하루 있었던 '참을 인' 써내려 간 에피소드가 휘리릭 스쳐 지나가며 인내심의 한계를 느낄 때 쯤 도착했다. 노릇노릇 살짝 그을린 토스트의 겉면과 두툼한 치즈, 그리고 정감 가는 모양새의 떡갈비까지. 일단 맨빵순이 모드를 다시 장착하고 브리오슈식빵 끄트머리를 한 입, 바삭! 하게 부서지며 버터를 가득 머금은 맛을 느끼고, 치즈와 떡갈비까지 같이 한 입! 그래, 역시 난 프랑스인의 피가 흐르나봐, 떡갈비는 치즈와 빵이랑 먹어야지!
그리고 남은 최종보스 밤 잼. 살짝 계피맛이 느껴지는 밤 잼은 꾸덕하고 진한 맛이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았고, 숟가락으로 잼만 퍼묵퍼묵 하다가 정신 차리고 토스트와도 같이 즐겨주었다. 아니 사장님 진짜로 어떻게 이런 조합을 탄생하신 건가요, 밤 잼만 파시면 안 되나요,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잼만 좀 더 드릴까요"라고 더 말도 안 되게 장구를 치시길래 "아니에요 많이 파세요"하고 돌아왔다.
사실 한 때 생각해보니 때때로 빠졌던 토스트가 있었다. 중학교 때는 학교 앞 트럭에서 숏컷트 언니가 파는 토스트가 맛있어서 1일 1토스트를 먹었었다. 그냥 진짜 얇은 식빵에 계란, 양배추, 케챱 마요네즈 소스가 끝이었는데(햄도 없었던 것 같다),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친구들이랑 매일이고 갔었다. 두 번째 나의 토스트부흥기는 임신했을 때였다. 먹는 것에 진심인 내가 입덧이 너무 심해서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었을 때였는데 갑자기 그 키위소스로 유명한 토스트가게의 토스트가 땡겨서 한동안 햄스페셜과 키위주스를 달고 살았었다. 아침에 토스트와 키위주스를 포장해서 회사 가서 먹고.. 아침에 바쁘면 퇴근 길에 토스트와 키위주스를 포장해서 집에서 먹고.. 사장님이 문을 늦게 여는 날엔 전화해서 언제 오시냐고 울부짖고.. (눈물 한 방울)
오늘로 나의 3차 토스트부흥기가 시작되나, 못 먹어 본 다른 토스트들이 계속 생각나서 꿈에 나올 것만 같다. (아니 치킨토스트에 감귤 잼이라니, 돈까스토스트에 오디 잼이라니!!!!! 사장님 최소 페어링 대학 박사학위 따신 듯!!!!!) 아무튼 이것으로 오늘도 행복한 한 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