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절에 버리러], 이서수
_노트를 펴서 빈 페이지 상단 가운데에 '엄마'라고 적었다. 그 밑에 엄마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을 써보았다. 여러 기억들이 떠올랐는데 그중 네 가지는 자동출력되었다. 내 기억의 자판기에 주르륵 붙은 수많은 버튼 중 엄마라는 버튼을 누르면 그것들이 나오도록 프로그래밍된 듯 곧바로 떠올랐다. 이상한 점은 네 개의 기억 중 절반은 열두어 살 때의 기억이고 나머지는 비교적 최근의 것이라는 거다. 그 기억 사이의 시간, 그러니까 대략 삼십 년 동안의 엄마에 대한 기억은 왜 곧장 떠오르지 않는지 생각해보다가 어쩐지 울적해졌다. 나는 무심하고 이기적인 딸이라는 사실이 또다시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공부하느라, 연애하느라, 일하느라, 결혼해서 아이 낳고 키우느라 전전긍긍했다는 핑계를 대기에는 삼십 년이라는 간극은 긴 시간임이 분명하다.
_열두 살쯤 되었을까. 어느 날 하교하고 돌아오니 낯선 아줌마와 아저씨들이 거실을 차지하고 있었다. 엄마나 아빠 친구들이 아니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해가 저물어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던 그들은 엄마가 시켜주는 짜장면을 먹고 밤새 고스톱을 쳤다. 너는 걱정하지 말고 동생 데리고 자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동생과 작은 방에서 잤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그들은 거실 여기저기에 널부러져 자고 있었다. 학교에 가기 위해 세수를 하고 아침밥을 먹고 옷을 입고 동생과 집을 나설 때까지 그들은 계속 자고 있었다. 학교가 끝난 뒤 재빨리 달려와 보니 엄마 혼자 거실 바닥을 걸레로 박박 문지르고 있었다. 그 며칠 동안 아빠는 볼 수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들은 아빠가 운영하던 작은 사업체의의 직원들이었다. 운영난에 시달리던 회사가 부도나게 생기자 몇 달 치 체불임금을 받으러 집에 찾아온 것이었다. 은행이 문을 열자마자 엄마는 아빠 몰래 몇 년 간 부어 온 적금을 깼고, 그렇게 그들은 돌아갔다고 했다. __우리집 거실에서 밥을 먹고 고스톱을 치고 잠을 자던 아줌마, 아저씨 무리와 그들의 수발을 들던 엄마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후 엄마는 홍대 근처 오뎅바 주방에서 한동안 일했다. 엄마가 퇴근할 무렵이면 나와 동생은 창밖을 내다보며 엄마를 기다렸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래된 육층 짜리 아파트였는데 우리는 601호에 살았다. 저 멀리 엄마가 보이면 우리는 엄마, 하고 불렀고 두 손에 장바구니를 든 엄마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__ 엄마, 소리에 웃으며 우리를 올려다보던 고단함이 묻은, 지금의 나보다 어린 엄마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삼십 여 년이 지난 2018년. 이 년 간 대학병원을 전전하다 유전자검사 끝에 딸아이의 진단명을 들은 날. 백만 분의 일의 확률로 발생한다는 희귀난치병이라는 소식을 듣고 잠시 망연한 표정을 짓던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너 그냥 이혼할래 ?__ 진심인듯 아닌듯 보였던 엄마의 얼굴을 나는 가슴에 묻었다. 찰나였지만 그 말에 흔들렸던 내 수치심과 죄책감도 함께.
마지막으로 몇 달 전. 이사갈 집 리모델링 공사 때문에 보름 정도 친정살이를 했었다. 아침에 엄마와 <인간극장>을 보았다. 육십 넘은 나이에 어린 시절 꿈이었던 가수가 된 한 여성의 이야기였다. 홀로 딸 둘을 키워 결혼시킨 뒤 노래를 배우고 어렵게 음반을 낸 그녀는 자신을 찾는 무대가 있다면 어디든지 갔다. 작은 트렁크를 끌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노인복지관에 가고, 새벽같이 큰 딸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지방축제에 가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속으로 대단하다고, 멋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방에 있던 아빠가 나와 티브이를 보며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다. 내가 이러저러한 멋진 아줌마라고 설명하려고 입을 떼려는데 엄마가 불쑥 말했다. 불쌍한 여자 이야기야. 남편도 없고 저 나이에 가수한다고 고생하는 여자야.
나는 약간 놀라서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는 티브이에 눈을 고정한 채 나는 멋지다고 생각했고 엄마는 불쌍하다고 생각한 그 중년의 여성을 보고 있었다. 엄마는 남편, 정확하게는 아빠라면 아주 징글징글해 하는 사람이다. 엄마에게 남편은 이렇다. 젊었을 때 온갖 고생시킨 남편, 호된 시집살이를 시킨 시어머니의 장남인 남편, 남에겐 관대하면서 가족에겐 무심한 남편, 평생 정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남편. 그런데 남편도 없는 불쌍한 여자라니. 엄마는 진짜 그렇게 생각한 걸까, 늦게나마 자신의 꿈을 이룬 그녀를 질투한 걸까. 아니면 둘 다일까. __ <인간극장>의 주인공을 노려보는 듯하던 엄마의 옆모습이 왜 이렇게 인상적인지 잘 모르겠다. 엄마를 아주 잘 안다고, 나만큼 엄마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 같다.
_"그러나 엄마에 대한 깊은 통찰이 찾아오는 드문 날이면, 엄마가 그 모든 고난을 뚫고 여기까지 와서 내 곁에 있다는 것이 놀랍다. 온갖 맘고생을 했음에도 젊은 남자 배우를 보며 무지개떡을 떠올리고 얼굴을 붉히는 게 기적 같다. 엄마의 마음에 아직 사랑이 남아 있다는 게 눈물겹게 기쁘다."(p.147)
이서수 작가 다운 소설이다. 작가만의 진중한 사랑스러움이 단어 하나, 글자 하나마다 배어난다. 그렇게 배어난 건 엄마와 딸이 함께 흘린 눈물 같기도 하고 엄마와 딸이 맞잡은 손에 스민 땀 같기도 하다. 가식이나 꾸밈없이 투명하면서도 어쩐지 끈적끈적할 것 같은.
작품해설에선 가정경제 이야기라는 표현을 썼고, 작가가 주로 노동이나 가정경제를 소설의 소재로 삼는 것은 맞다. 그런데 이번에는 엄마와 딸 이야기로 간직하고 싶다. 읽는 동안 그리웠고 슬펐고 씁쓸했고 후회했고 자책했다. 슬며시 웃었고 이제와 더 알고 싶었고 보고 싶었다. 그래서 전화를 했고 엄마 목소리를 들었다. 그 다음 딸아이를 불러 꼭 안고 뽀뽀세례를 퍼부었다.
무엇보다도, 난생 처음 '엄마'라는 제목을 붙인 기억의 목록을 적고 잊은 줄 알았던 추억을 소환해 그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 책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