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시아의 여정], 윌리엄 트레버
_"사람들의 이름이 어떻게 지어지는지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다.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주어지는지 생각해봐도 그렇다.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도 이상한데, 우선 그 아일랜드 아이와 자신만 봐도 그렇다."(p.298)
옮겨 적은 이 문장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이상하다'라는 단어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아 국어사전을 펼쳤다. 세 가지 정의 중 문맥상 적절한 것은 이거였다. 의심스럽거나 알 수 없는 데가 있다. 정확한 뜻을 대입해 다시 읽어보았다.
---사람들의 이름이 어떻게 지어지는지 생각해보면 참 의심스럽거나 알 수 없는 데가 있다.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주어지는지 생각해봐도 의심스럽거나 알 수 없는 데가 있다.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도 의심스럽거나 알 수 없는 데가 있는데, 우선 그 아일랜드 아이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만 봐도 의심스럽거나 알 수 없는 데가 있다.
가슴이 일렁였다. 이상하게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난데없는 인류애(?)가 차오른 것이다. 나를 비롯한 사람들 모두가 안쓰럽고 애틋했다. '의심스럽거나 알 수 없는 데가 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려 애쓰는 모든 삶에 경외감이 들었다. 이상하면서도 새삼스러운 이 감정은 이내 어떤 희망이나 용기 같은 것으로 바뀌었다. 대단한 건 아니다. 그러니까 외로우면 외로운 채로, 고되면 고된 채로, 두려우면 두려운 채로,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아득한 희망이나 희미한 용기가 피어오르는 것이다.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을 읽을 때면 여지없이 찾아오는 이 선물 같은 감정은 전혀 낯설지 않다. 아니, 오히려 이번엔 또 어떤 선물을 받을까 기대하며 책장을 넘기게 된다.
_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이렇다. 조용하지만 에누리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인물들은 어떤 선택을 하고 운명은 어떤 사건을 던져 준다. 일견 사소한 듯한 이 선택과 사건으로 인해 삶은 방향을 꺾고 급류에 휩쓸린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삶의 복판 혹은 모퉁이에 이른 그들은 곱씹고 또 곱씹는다. 왜, 어떻게, 어쩌다가, 어찌하여. 이것이 이유일까, 저것이 시초일까. 누구의 잘못일까. 언제부터일까. 느닷없이 들이닥친 일이다. 아니,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아니, 그냥 일어난 일이다. 아니,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그렇게 그들과 함께 한바탕 번뇌에 시달리고 나면 우리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인정하게 된다. 삶은 참 이상하다고. 알다가도 모르겠고, 알수록 모르겠다고. 결국 모르겠고, 끝내 모를 것이라고. 누구에게나 그만한 사정과 사연이 있고, 누구에게나 안간힘을 쓰며 지나온 과거가 있으며 누구나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그러므로 사람이란 눈물겹도록 서글프고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_"살인을 한 남자의 저 깊은 곳에도 다른 영혼과 다를 바 없는 영혼이, 한때는 분명 순수했을 영혼이 있었을 것이다."(p.319)
"그들은 정말 향기로운 꽃들 사이에서 모두 함께, 안전하게 축복받고 있을까? 만일 그 일이 일어났더라면 그녀도 그들과 함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조심스러운 회의가 들어,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확실히 아는 것만 선택하리라 생각한다. 그녀는 두 손을 뒤집어 다른 쪽도 햇볕을 쐬고 고개를 살짝 기울여 얼굴의 반대편도 따뜻하게 한다."(p.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