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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의 노블 테라피 Mar 04. 2023

답답하고 분하고 대단하고 애틋한 일

[울분], 필립 로스

_우리는 날마다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점심 메뉴 같은 사소한 것부터 진로나 직업, 결혼과 같은 중요한 일까지 우리에겐 늘 크고 작은 선택지가 주어진다.


오늘 점심 간단히 집에서 먹고 싶었던 나는 하교하는 아이를 마중 나간 길에 사온 김밥 한 줄로 늦은 점심을 때웠다. 전기밥솥을 여니 남은 밥이 없었고 혼자 먹는데 새로 해서 먹기는 좀 그래서. 학창 시절 기자가 되고 싶었던 나는 지원했던 신문방송학과에 떨어졌고 관심도 없던 경제학을 전공했다. 어쩌다 보니 시류에 따라 염두에 두지 않았던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10년 가까이 공직 생활을 했다. 20대 중후반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져 상심에 빠졌을 때 어떻게 인연이 닿아 만난 사람과 결혼했다.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노후를 보장해줄 공무원 연금을 생각하며 20년은 채우고 그만두고 싶었던 나는 아픈 아이를 돌보기 위해 휴직을 반복하다 결국 일을 관뒀다. 불안과 절망, 무기력의 웅덩이에서 허우적대다 잠시나마 고통을 잊기 위한 수단으로 피아노, 수채화 같은 취미를 기웃거리던 나는 마침내 독서라는 안식처를 찾았다. 책을 읽고 필사하고 허접한 독후감이나 끄적이던 나는 언제부턴가 뭔가에 홀린 듯 소설에 빠져들었고 언감생심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까지 품게 되었다.


나는 선택했다. 오늘 점심으로 김밥을, 경제학 전공을, 직업으로서의 공무원을, 남편을, 휴직과 퇴직을, 읽고 쓰기를, 소설을. 그런데 가만 따져보니 어지럽게 놓인 수많은 갈림길 위에서 나는 정말 선택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딴에는 숙고한 것들이 과연 내가 선택한 것일까. 나는 그저 무언가를 쫓아가고 따라간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뭐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쫓음과 다름없는 내 선택들의 결과,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저마다 최선을 다한 수많은 선택들과 쫓음들이 모인 결과,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니. 목덜미에 선득한 기운이 돌면서 소름이 돋는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_"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나도 네가 그런 아이가 아니란 건 안다. 내가 아들 문제에서는 누구보다 운이 좋다는 걸 안단 말이다." "그런데 왜 이러시는 거예요, 아버지?" "인생이 그래서 그래.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디뎌도 비극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으니까. "이런 맙소사, 꼭 포춘쿠키에 나오는 말 같네요." "그러냐? 그래?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말 같지 않고 포춘쿠키에 나오는 말 같아? 내가 내 아들 앞에 놓인 미래, 작은 것으로도, 아주 작은 것으로도 부서질 수 있는 미래에 관해 말하는데, 그게 그렇게 들려?"(p.24)


"그래, 이러기만 했다면 또 저러기만 했다면. 모두 함께 모여 오랫동안 살고. 모든 일이 잘 풀렸을 텐데.(...)그가 우월한 코틀러와 사귀지만 않았다면! 만일 그가 채플에 마흔 번 나가 마흔 번 출석표를 제출만 했다면 그는 지금 살아서 변호사 일에서 막 은퇴했을 것이다."(p.237)


"다시 말해서 대학에 다니는 동안 거의 매주 수요일마다 채플에 가야만 퇴학을 안 시키겠다고 했을 때, 마커스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다름 아닌 매스너답게, 다름 아닌 버트런드 러셀의 제자답게, 주먹으로 학생과장의 책상을 내리치면서 두번째로 이렇게 내뱉는 것 외에 달리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좇까, 씨발."

그래, 멋지고 오래되고 도전적인 미국의 "좇까, 씨발". 그것으로 정육점집 아들은 끝이었다. 그는 스무 살 생일을 석 달 남기고 죽었다.(...)그랬다면 그의 교육받지 못한 아버지가 그동안 그에게 그렇게 열심히 가르치려 했던 것은 나중에 배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심지어 희극적인 선택이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p.239)


_그러니 삶이란, 인생이란, 운명이란 얼마나 답답하고 분한 일인가. 이 얼마나 애가 타고 갑갑하고 억울하고 화나며 원통한 일인가 말이다.

그러니, 그럼에도 선택이라 믿고 쫓으면서 삶을 이어가는 우리는 얼마나 대단하고 애틋한 존재인가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

울분 : 답답하고 분함. 또는 그런 마음.

답답하다 : 애가 타고 갑갑하다.

분하다 : 억울한 일을 당하여 화나고 원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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