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윌리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_어떤 것을 알다가도 모르겠을 때, 나 자신이 그 자체임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때, 사전을 펼쳐 의미를 찾아본다. 이를테면 삶이라든가 가족 같은 것들. 늘 어딘가 어설픈 나는 매일 같이 사용하는 단어에서도 뜻밖의 혹은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곤 한다. 이번에는 '가족'의 의미를 알고 싶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의문 때문이다. 가족은 무엇일까. 가족은 무엇이길래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일까. 가족이란 대체 무엇이길래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것일까.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국어사전에서 찾은 '가족'의 정의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다는 부분이다. '가족'이라는 친족 집단의 중심은 주로 부부라는 것. '가족'의 시작점은 부부라는 것. 어찌 보면 뻔한 이 문장은 조금만 생각해도 무시무시한 진실이다.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며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뀌게도 하는 막대한 힘을 가진 것이 부부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부가 그 위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대상은 그들의 자녀일 것이다.
_"바턴 집안의 식구들, 우리 다섯 명 - 줄곧 그랬듯 정상적이지 않은 - 이 하나의 구조물로 내 머리 위에 떠 있고, 심지어 다 끝날 때까지 나는 그것이 거기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그런 느낌이었다.(...) 우리 다섯 식구가 정말로 건강하지 않은 가족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우리의 뿌리가 서로의 가슴을 얼마나 끈질기게 칭칭 감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내 이름은 루시 바턴」, p.194)
젊은 시절의 루시는 자신의 "정말로 건강하지 않은 가족"의 "뿌리가 서로의 가슴을 얼마나 끈질기게 칭칭 감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렇게 서로 징글징글하게 감겨 있는 가족의 뿌리는 루시의 평생을 옭아맸다.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낳아 키우다 이혼한 뒤 재혼하고 두 번째 남편을 잃고 유산한 딸을 위로하는, 인생의 매순간마다 "정상적이지 않은" 가족의 그림자가 루시를 드리웠다. 끔찍한 가난, 폭력적인 부모(부부)와 고립되고 위축된 채 자란 오빠와 언니. 그래서일까. 노년에 이르렀음에도 루시는 쉽게 겁에 질렸고, "지난 세월 동안 스스로 만들어낸 어머니에게 말하며 울었다. 엄마, 나 아파요, 나 아파요."(p.257) 가족이 무엇이길래.
"몇 번-최근에-내 어린 시절의 커튼이 다시 한번 내 주위로 내려오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끔찍한 폐쇄, 조용한 공포. 이게 내가 느낀 감정이고, 내 어린 시절 전체가 그것이었다."(p.278)
루시의 첫번째 남편인 윌리엄도 마찬가지였다. 비극적 비밀을 숨긴 어머니와 세계2차대전 당시 독일군이었던 아버지가 남긴 "블루"한 그늘로부터 아들은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일흔 살의 윌리엄은 세상을 떠난지 오래인 부모가 등장하는 악몽에 시달렸고, 그 고통을 루시에게 털어놓고 도움을 청했다. 그 부부, 그러니까 자신의 부모를 오랜 세월 함께 겪어낸 (한때 가족이었던) 루시에게. '가족'이라는 친족 집단의 시작점이자 중심인 부부(부모)가 그 구성원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사람의 평생을 뒤흔들 수도 있는 부부(부모)의 파급력이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그 막대한 영향을 받고 자라나 어영부영 부부이자 부모가 되어버린, 나는 지금, 그 엄청난 힘을 매일 과소평가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끔찍한 가족이었지만 루시는 결혼식날, 첫 아이를 낳은 날, 근사한 곳으로 여행을 간 날마다 부모를 떠올렸다. 지독하게 슬프고 외로울 때면 사랑을 주지 않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울었다. 가족이란 대체 무엇이길래.
부부가 되어 두 딸을 낳은 루시와 윌리엄은 부모가 되었고 가족을 이루었지만 이혼했다. 각자 재혼한 뒤에도 그들은 두 딸과 함께 여전히 가족처럼(?) 지낸다. '시간의 흐름을 벗어나 한 가족이었을 때 만들어진 지난날의 리듬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p.102)은 그들에겐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실망과 환멸, 오해와 배신이 있었지만 그들은 가족이었으므로. 둘째 딸이 "십대 때 일년 동안 앞머리 일부를 자주색으로 염색하고 다녔던" 사소한 이야기까지도 함께 기억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함께 떠나보냈으며 부부의 이혼으로 인한 상실의 고통을 함께 겪은 그들은 가족이었으므로.
이쯤 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가족은 무엇일까. 알다가도 모르겠는, 나 자신이 그 자체이고 심지어 그 시작과 중심의 자리에 있음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가족이란 대체 무엇일까. 되돌이표 같은 내 의문에 루시는 이렇게 답해 주었다.
"하지만 내가 오 윌리엄! 하고 생각할 때, 그건 또한 오 루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p.297)
“펄떡거리는 심장이 한번씩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끌어안는다.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내 이름은 루시 바턴」p.217)
_3년 전 기록을 찾아보니 나는「내 이름은 루시 바턴」읽고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독후감을 썼다. ""가족은 누가 보지 않으면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다"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한 말이다." 가족에 관한 당시 내 지배적인 생각이었을 것이다. 누가 보지 않으면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 여전히 어느 정도 동감하는 바다. 그러나 그사이 조금 달라진 나는 루시가 얻은 깨달음에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다.
내가 오 가족! 하고 생각할 때, 그건 또한 오 나!를 의미한다는 것.
어찌 되었든 이건, 내가 끌어안아야 할, 내 이야기, 내 거라는 것.
그것이 바로 가족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