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근희의 행진], 이서수
_부끄럽지만 못된 마음 하나를 고백하고 싶다. 이 고약한 심보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아무래도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한 불행을 맞닥뜨리게 되면서인 것 같다. 척박한 내 마음에 쉽게 뿌리 내린 뒤 싹을 틔운 그 심보는 쑥쑥 자라나 틈만 나면 나를 툭툭 치며 말을 건다. 두 가지 중 하나다.
1) 잘 따져봐. 저 사람은 겨우 그만한 일로 코가 빠져 있는 거야? 너 같은 사람도 버티며 살고 있는데? 네가 더 불행하지 않니?
2) 야, 너는 고작 이만한 일로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는 거야? 저 사람에 비하면 너는 불행한 것도 아니지 않아? 저런 일을 겪은 사람도 이 악물고 살아내고 있는데?
바로 '누가 누가 불행한가'. 누가 더 불행한지 따져보는 것이다. 기준은 당연히 '나'이고 비교 대상은 대부분 사람이지만, 실재하는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 허구의 인물인 경우도 있는 것이다. 매번 스스로에게 묻는다. 대체 왜 이러느냐고. 1번이든 2번이든, 실재든 허구든, 이렇게 불행을 비교해서 뭘 어쩌자는 거냐고.
_"말이 너무 심했나.(...)어쩌면 언니는 정말로 대머리가 될까봐 내내 두려워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내가 그 두려움을 모르고 함부로 말한 건지도."(p.37)
"공감해. 나였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
직접 겪지 않으면 모르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마."(p.74)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지만 과연 내가 정말로 아는 걸까 싶었다. 사영이 프리랜서의 삶을 뼛속까지 알기는 어렵듯이 나 역시 사망한 환자의 몸을 만지는 일이 어떤 일인지 완벽히 알지는 못할 것이다. 당연한 일임에도 나는 커다란 간극을 느꼈다. 사영이 겪는 고통의 무게와 내가 겪는 고통의 무게 중 어느 것이 더 무거울까."(p.104)
"한 가지 더 언니가 모르는 게 있어. 관종도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거야. 그걸 왜 모를까. 왜겠어. 언니가 꼰대라서 그런 거지. 나는 언니가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꼰대가 되어버린 게 슬퍼.(...)나는 맨날 부동산 얘기, 연금 얘기만 하는 언니가(...).(p.159)
"어서요. 이럴 땐 가게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좋아요. 가서 실컷 울고 오세요. 아까 보니 매미 소리 내면서 잘만 우시던데요."(p.269)
이서수 작가의 소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노동, 주거, 여성.. 그런데 사실 가장 먼저 떠올랐으면서도 따로 특별히 밝히고 싶어 일부러 적지 않은 게 있다. 바로 '연대'. <미조의 시대>에선 나와 엄마와 수영, <엉킨 소매>에선 나와 해정과 주영, <발 없는 새>에선 나와 사영, <젊은 근희의 행진>에선 나와 근희와 강하와 엄마, <나의 방광 나의 지구>에선 아내와 남편, <연희동의 밤>에선 나와 경희, <그는 매미를 먹었다>에선 덮밥집 사장과 카페 사장.
어쩐지 익숙한 인물들은 구체적으로 행복하지 않다. 낯설지 않은 불행이다. 인생의 행로에서 방향을 잃어 헤매거나 기진한 채 주저앉은 그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좌절한다. '나'처럼 비뚤어진 심보로 남몰래 불행을 비교하고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에겐 뭔가 특별한 힘이 있다. '연대'의 힘. '내가 더 불행해'라고 생각할지언정 그들은 서로의 고통에서 눈길을 떼지 않는다. 도무지 걷히지 않을 듯한 안갯속 같은 삶을 안간힘을 써 살아내면서도 그들은 맞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앞으로도 놓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그들은 견디고 버텨 기어코 살아낼 것이라 나는 믿는다.
"우리는 종종 서로가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마음이 서로를 무시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서로를 보살피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게 신기했다."(p.191)
다시 내 문제(?)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나는 왜 그토록 '불행 비교하기'에 집착했을까. 이 소설집을 읽고 나서 나는 답을 얻은 것 같다. '연대'를 바랐던 것이다. 누가 더 불행한지를 따지고 싶었던 게 아니라 함께 불행하니까 함께 가자고. 내가 혹은 네가 더 불행해서 뭐 어쩌자는 게 아니라 서로의 불행에서 눈길을 떼지 말자고. 어차피 불행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손을 맞잡자고. 우리 연대하자고. 나는 실재하는 사람에게, 소설 속 인물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_우리의 시대상을 사실적이고도 생생하게, 진중하면서도 위트 있게 그려내는 작가 고유의 감각과 문체가 나는 참 좋다. 사랑스럽다. 사람과 세상을 향한 작가만의 시선이 듬직하다.
(이미 많은 관심을 받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 확실하지만) "이후의 일들은 신의 영역으로 밀어두고 짐짓 모른 척하며 소설을 오래오래 쓰고 싶다"는 "우리" 이서수 작가,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