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의 몸], 희정
_몸. 제목에서 먼저 눈에 띈 단어는 '몸'이었다. 사실 최근 몇 달 동안 계속 몸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다. 몸 중에서도 아픈 몸, 정확하게는 건강 중심 사회가 인정하지 않고 배제하는 몸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샅샅이(?) 찾아 지금도 읽는 중이다. 책이 한권씩 쌓여갈수록 절절히 깨닫는다. 사람은 몸을 사는 존재라는 사실을. 몸은 곧 삶이라는 것을. 매순간 몸을 의식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삶이 엄연히 공존하는 현실을. 그래서일까. '몸'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믿음이 갔다.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여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베테랑의 능력이나 실력이 아닌 '몸'에 방점을 찍어 이야기하는 책이라니. 역시 희정 작가구나, 하고 감탄한 동시에 "베테랑의 몸", 다시 말해 '베테랑의 삶'은 어떠한지 궁금했다.
_"하다 보면 알게 돼요", "하다 보면 하게 돼요.", "해보는 수밖에 없어요", "말로 하려니 어렵네요"
보석 세공사, 조리사, 로프공, 어부, 조산사, 안마사, 마필관리사, 세신사, 수어통역사, 일러스트레이터, 배우, 식자공. 서로 다른 연령과 성별, 분야의 베테랑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보석 세공 작업자가 "빠르게 회전하는 휠 기계 날에 금속 조각을 가져다 대며 이렇게 말"(p.22)하는 것이다. "여기는 밀 듯이 해주시고요. 이 부분은 가져다 댄다는 느낌으로만." "손목과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과 "힘의 고른 배분“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해보는 수밖에. 직접 몸으로 부딪혀보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10년이고 20년이고 일이 몸에 달라붙고 밸 때까지 계속 꾸준히 반복하는 거다. 한곳에 오래 붙박여 혼자 버텨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묵묵히 인내하면서 성실하게. 이왕이면 "자존심"과 "안전"을 지키면서. "내가 아니라 우리가 일한다는 생각으로". "나에게 올 미래를 적극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우리의 몸은 신비로워서 그러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일이 몸에 달라붙어 있다. 어느새 일이 스며들어 있는 몸을 발견하게 된다. 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는 오랜 인내와 성실의 또다른 대가다.
그렇다면 왜 베테랑들은 오랜 시간 "매일 작업장, 주방, 목욕탕, 출산실,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p.12)갔을까? 그들의 일터이기 때문이다. 돈을 벌어 생계를 꾸리려면, 자식들을 키우려면 그 일을 해야 했다. 물론 자신의 가치관이나 적성, 소질에 부합했다는 행운도 일부 작용했지만 어찌 됐건 그 일은 그들의 업이자 노동이었다. 그것이 곧 삶이기에 그들은 그토록 꾸준하고도 묵묵히 성실을 몸에 새기며 버텨낼 수 있었다. 그 결과 "뱃심 든든한 몸통, 딴딴한 장딴지, 표정이 다채로운 얼굴, 짧게 다듬어진 손톱, 갈라진 발바닥, 청력 낮은 귀"가 그들의 몸이 되었다. 몸의 존재인 그들은 "오랜 시간 한자리에서 일한 사람만의“ 몸을 가지고 몸을 살아갈 것이다.
_"여기까지 쓰고 생각한다. 베테랑의 몸을 안다는 것은 나에게 무슨 의미인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나의 노동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p.13)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스스로에게 묻는 동시에 독자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베테랑의 몸을 안다는 것은 당신에게 무슨 의미인가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당신의 노동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배테랑의 몸을 통해 나는 사람은 몸의 존재이며 몸은 곧 삶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달았다고. 그리고 부끄럽지만 아직 노동이 아니지만 스스로는 노동이라 여기고 싶은 글쓰기가 내게는 삶을 붙들어주는 한줄기 희망이라고. 언젠가 노동이 되기를 바라는 글쓰기를 계속하기 위해 베테랑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내 몸에 정성껏 새기고 싶다고. 혹여 끝내 누구나 인정하는 노동이 되지 못하더라도, 나 혼자만의 노동인 글쓰기가 주는 "부끄러움"과 기쁨과 슬픔을 오롯이 누리며 남은 삶을 살고 싶다고.
"자기 일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베테랑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무엇이건 베테랑에 도달하기 쉽지 않다. 우리가 쓰는 사물(도구)과의 관계 맺음으로 시작해서 타인은 물론, 살아가는 터전까지. 우리는 노동을 매개로 이 모든 것과 관계를 맺고 있기에, 그 관계들 사이에서 자유롭기가 어렵다. 자유롭지 않으니 부끄러움은 늘 공동의 것이다. 자주 부끄럽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 쓴다. 그린다. 일한다. 노동한다. 무엇이건 시도한다."(p.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