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은 없고요?], 이주란
_작가님, 잘 지내세요? 별일은 없고요?
"별일은요." 그냥 그렇죠. 제 소설 읽어보면 아실 거예요. 독자님은 어떠세요? "별일은 없고요?"
저는.....
물론 이주란 작가와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리 없지만, 만약 그녀가 안부를 물었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저는요,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저런 일도 있었고. 참, 그러고보니 그런 일도 있었네요. 이 여덟 편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말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 다시 책장을 뒤적여 반복해 읽은, 지금의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별일은요. 저도 그냥 그렇죠, 뭐.
그렇게 속으로 말을 삼킨 대신 헤아려볼 것 같다. "별일은 없고요?" 라고 물은 사람의 마음과 "별일은요"라고 답한 사람의 마음을. 그들이 나처럼 삼킨 말이 무엇인지, "왜 그러는지"(p.79),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하여 가늠하거나 미루어 생각'해볼 것 같다. 그렇게 헤아리기만 하고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더라도, 오래오래 생각하고 헤아리고 싶다.
_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마음이든, 타인의 마음이든 누군가의 마음을 '가까이서 자세히 살피는' 마음을 생각했다. 그 마음은 한없이 투명할 듯하면서도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다. 가만가만하고 동글동글하면서도 군데군데 몽톡하게 살짝 튀어나온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렇기에 더 들여다보고 헤아리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음'과도 같은 소설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_"그동안 고생했으니까 당분간은 좀 쉬어.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런 말도 해주었다. 엄마의 말에 나는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너무 쉽게 부서진 것 같아서 미안했다."(p.14)
(...)오해를 받은 적은 있어도 왜 내려왔느냐고 묻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왜 내려왔는지는 진실로도 거짓으로도 대답할 일이 없었다. 아무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어느 날 밤엔 갑자기 외롭거나 불안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노력 없이도 아침엔 괜찮아졌다."(p.41)
"우리 사이엔 별거 아닌 이야기들이 있었으나 별거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그런 생각이 드는, 여름밤이었다. 은영아 너는 시시한 이야기 전공인 거 같아! 은영아 우리 힘드니까 너도 말 좀 해! 라며, 사람들은 즐겁고 나는 그렇지 않은 밤들과는 아주 먼 그런 밤."(p.67)
"(...)좀 멀리 보고 살라는 말이 늘 비수가 되어 꽂히던 때였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안다고 말한 적도 있다. 아는데도 내가 왜 그러는지 생각 좀 해줄 순 없을까. 씨발년. 한번쯤 그렇게 말해보고 싶었으나, 단 한 번도 그렇게 말한 적 없음에도. 없음에도 나는 알고 있었다."(p.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