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을 비는 마음], 김혜진
_예상하고 기대했던 대로 '어떤 마음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곱씹고 되짚어보아야 비로소 헤아릴 수 있는 '어떤 마음들'. 손쉽게 재단하거나 판단할 수 없고 간단히 단정지을 수 없는 아니, 그래서는 안 되는 '어떤 마음들'. 결국 나와 당신, 우리 모두가 품은 '어떤 마음들'이었으므로 끝내 고개를 떨구며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얼마간 각오를 하고 책을 펼쳤다. 수시로 얼어붙은 듯 멈칫했고 자주 심호흡을 했으며 종종 눈을 치뜨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어떤 문장과 문단은 몇번이고 반복해 읽고 옮겨 적었다.
_신경이 곤두설 때처럼 가슴이 약간 뻐근하고 두근거렸다. 마음이 축축히 젖어드는 듯 싶다가도 희미하게 환해졌다. 누구에게도 내비칠 수 없는 옹졸한 마음이 발각된 듯 부끄럽다가도 그럼에도 살아내려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다독여보기도 했다. 한없이 울적해지는 와중에도 어디선가 '희망이라고 할 만한 게'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사람이라면 전부 지긋지긋하다고 혀를 내두르면서도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이므로, 그럼에도 살아내려 애쓰는 사람이므로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수긍하게 되었다. 나 역시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내려 애쓰는 사람이니까.
'어떤 마음들'을 생각해 주저하고 망설이다 끝내 꺼내지 못한 채 삼켜버린 '어떤 마음들'과 어떤 말들을 생각했다. '어떤 마음들'에 상처주지 않으려 애쓰지만 필연적으로 생채기를 낼 수밖에 없는 '어떤 마음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어떤 마음들'로 부대끼는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려 애쓰는 나와 당신, 우리가 품은 '어떤 마음들'을 생각했다. 생각한다고 별수 없겠지만 앞으로 '어떤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야 할지 생각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마웠다. 한결같이 섬세하고 세심하고 살뜰하고 다정하고 '사려 깊은' 김혜진 작가에게. 닮고 싶은 소설가에게.
_"그러나 다시금 희망이라고 할 만한 게 생겨나고 있었다. 아니, 사는 동안 그런 게 절실하지 않은 때가 한 번도 없었다는 걸 미애는 모르지 않았다."(p.18)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는 동안 어쩌자고 서로의 사정을 이렇게 속속들이 알아버렸을까 생각했고, 그게 뭐든 차라리 몰랐으면 나았을 거라고 중얼거렸다."(p.100)
"그러자 다 잊었다고 생각한 어떤 시간들이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허물어지는 것이 다만 눈에 보이는 저 낡은 주택들만은 아닐 거라고 말이다."(p.104)
"그날 밤, 자신을 잠 못 들게 했던 감정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기대였고 우려였고, 가능성이었고 두려움이었다. 그것은 방향을 조금만 틀면 완전히 달라 보이는 홀로그램처럼 밤새 그녀의 내면에서 반짝거렸다. 아니, 그건 그녀가 도무지 짐작할 수 없고, 예상할 수 없던 자신의 미래였는지도 모른다."(p.113)
"인선은 멀찌감치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이상하게 마음이 착찹해졌다.(...)일에 관한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그 순간, 자신이 필사적으로 피해 다니던 어떤 생각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기분이었다."(p.249)
"어떤 시절에 내가 머물렀던 집들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단련시키며 기꺼이 나의 일부가 되었다는 생각을 종종한다."(p.290/ '작가의 말'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