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사람], 최진
_왜 저들이 아니고 나일까. 왜 저 아이들이 아니고 내 딸이어야 했을까. 고백하건데, 내가 '읽고 쓰는 일'에 마음을 쏟게 된 건 이 의문 때문이었다. 답을 얻고자 책을 펼쳤다.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읽고 나니 다른 의문이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왜 내가 아니고 저들일까. 왜 내 딸이 아니고 저 아이들이어야 했을까. 또 답을 얻기 위해 읽고 또 읽었다. 무력감과 죄책감, 수치스러움 같은 감정들이 내게 찾아왔다. 어쭙잖은 글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그냥 쓰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변변찮은 무언가를 쓰는 것으로 무력감과 수치스러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론은 정반대였다. (얄팍하고 일천한 내 읽기와 쓰기의 한계 탓도 몰론 있겠지만) 의문은 더 깊어졌다. 딸아이를 볼 때마다 '하필'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여전했고, 저들이 아닌 내가 처한 상황응 떠올릴 때마다 '스스로 힘이 없음을 깨닫고 허탈하고 맥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될 수도 있었을 저들을 볼 때마다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느낌'이 들었고, 나에게도 어떤 책임이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진 목숨이나 처지'가 엄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고, 세상은 '1더하기 1은 2'라는 수학적 공식이나 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뜻하지' 않은 일이 매순간 수없이 벌어지는 곳이라는 사실 또한 새삼 깨달았다.아무리 보고 듣고 겪어도 익숙해지기는커녕 그때마다 소름끼치도록 새삼스러운 그 사실들을.
_이 소설은 간격을 두고 두 번 정독했다. 그속에는 내가 품어왔던 오랜 의문들과 감정들과 단어들이 말 그대로 몽땅 담겨 있었다. 내 마음에 구멍을 내어 속속들이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순식간에 '목화'가 되었다. 힘껏 고민하고 마음껏 괴로워했다. 그러고 싶었고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정말이지 실컷 그랬더니 어떤 마음 하나가 피어올랐다. 왜 저들이 아니고 나일까. 왜 내가 아니고 저들일까. 계속 묻고 고민하고 괴로워하자고.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목도하자고. 무력감과 죄책감이 들고 한없이 수치스러워도 묻고 또 묻자고. 하지만,
"저렇게 많은 사람이 죽는데 어째서 나는 살아 있지?"(p.65). 왜 저들이 아니고 나일까. 왜 내가 아니고 저들일까.
이 의문들에 답이 있을까. 운명이나 숙명, 팔자라고? 그럼 "씨앗. 온도. 습도. 토양. 뿌리. 줄기. 잎. 꽃. 열매. 어디까지를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p.114) 과연 누가 답해줄 수 있을까.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어쩌면 내가 찾는 건 답이 없는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의문을 계속 품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내가 구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무감해지거나 무심해지지 말고, 떳떳해지거나 당당해지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끝까지 묻고 고민하고 괴로워하자고. 그리고 그럴 때마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믿을 만한 친구나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듯 이 소설을 펼치고 싶었다.
_"때로 목화는 "많이 죽었어"라는 말 외에는 꺼내지 못했다. 그럴 때 목수는 "한 명을 살렸다"라고 기록했다"(p.100)
"살리기 위해서는 목격해야만 했다."(p.109)
"돌진하는 죽음을 피할 방법은 기적뿐이었다. 기적이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느냐를 따지지 않고 룰렛처럼 무작위로 일어났다."(p.111)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신에게 구걸할 일이 늘어난다는 것. 목화는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p.125)
"그럼으로 남김없이 슬퍼할 것이다. 마음껏 그리워할 것이다. 사소한 기쁨을 누릴 것이다. 후회 없이 사랑할 것이다. 그것은 목화가 원하는 삶. 둘이었다가 하나가 된 나무처럼 삶과 죽음 또한 나눌 수 없었다."(p.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