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매력적인 여인이라니

[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정말이지 나는 이 여인에게 폭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소설 주인공이지만 그녀가 어쩐지 미국 어딘가에서 실제로 살고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자꾸만 나도 모르게 그려보게 된다. 키도 덩치도 큰, 화려한(그래서 촌스러운) 옷차림에 큼지막한 검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 그녀의 모습을.


'올리브 키터리지'는 두 남편과 사별하고 결혼해 가족을 이룬 외아들과는 멀리 떨어져 살며, 홀로 외로이 살아가다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나,

노인복지타운에 입주해 그곳에서야 드디어 친구다운 친구를 처음 사귈 수 있었던,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기다리며 기저귀 팬티를 입은 채 자신의 기록을 남기는 86세 여인이다.


그리고 그녀는, 솔직하나 한편으론 무례하고, 예민한데도 눈치가 없다. 강인하면서도 외로움을 잘 타고, 퉁명스럽지만 츤데레한 면이 있기도 하다. 오만하면서도 노년에도 문득 찾아오는 깨달음을 받아들일 줄 알고, 냉정하지만 오지랖이 넓은 수다쟁이다. 아닌 척 하지만 실은 누구보다도 속물이고, 무심해 보이지만 자연의 작은 변화를 포착할 정도로 섬세하다. 남의 불행에 공감하면서도 이를 통해 자신의 고통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위안을 받으려 하고, 남들의 관심을 불편해하면서도 실은 누구보다 이를 간절히 바라는 금.사.빠이기도 하다. 자신에게도 다가오는 죽음이 두렵지만 그럼에도 (80 넘어 처음으로 생긴) 친구에게 저녁 먹으러 가자고 하기 위해 무심히 지팡이를 짚고 몸을 일으키는, 그런 여인이다.


이러니 누구라도 그녀에게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다시, 올리브]는 올해 출간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장편소설로, (우리나라에는) 2010년에 출간된 [올리브 키터리지]의 후속편이다. 전작에 등장할 당시 이미 70대에 접어들었던 올리브는 이제 80대의 나이로 여전히 올리브답게 등장한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올리브를 중심으로 미국의 작은 해안마을에 사는 사람들 - 갖가지 시련과 불행을 겪고도 꿋꿋이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 - 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듯이, [다시, 올리브]도 인생의 수많은 '실패와 상실의 순간'들을 간직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다만 한 가지! 전작과 비교해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죽음'에 대해 아주 깊숙이 다룬다는 것이다. 작가는 무르익은 노년기를 살아가는 올리브와 죽음에 임박한 올리브의 옛 제자 등을 통해 인간의 필연적 공포인 '죽음'을 진지하지만 진부하지는 않게, 생생히 이야기한다.


"선생님 나이에도 죽는 게 무서우세요?"


올리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 맙소사. 내가 이미 죽은 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어. 하지만 여전히 죽는 건 무서워." (...)"알겠지만, 신디. 네가 정말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그리고 죽게 된다면, 진실은.....우리 모두 그저 몇 걸음 뒤에 있다는 거야. 이십 분 뒤, 그게 진실이야."(p.207)


"죽는 게 죽을 만큼 무서워. (...)요즘은 모든 게 순식간이야"(p.300)


개인적으로는 올리브가 재혼한 남편 '잭'과 함께 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각자 배우자와 사별한 아픔을 겪은 이들이 티격태격하는 평범한 일상을 읽는데도, 불안함과 슬픔이 서서히 퍼지는 느낌에 마음이 안 좋았다. 너무 늦은 나이에 시작(올리브는 '시작'이 아니라 '계속 이어가는 것'이라 했지만)한 그들의 사랑을 죽음이 언제 갈라놓을지 몰라서. 나만 그렇게 느꼈을까.


(...)누구도 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그저 배 나온 늙은 일일 뿐 전혀 쳐다볼 만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p.10)


"나이가 들면, (...)투명인간이 돼. 그건 사실이야.(...) 자기가 더 이상 아무 존재가 아니라는 걸. 엉덩이가 큰 종업원에게 투명인간이 되는 거지."(p.325)


어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늙음'과 '죽음' 그리고 '사랑', 이 당연한 것들에 대해 이 소설보다 더 노골적이고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을까. 인간의 모순적이고 복잡 미묘한 심리와 삶의 쓰라린 이면을 어떻게 이토록 적나라하고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직도 이 매력적인 86세의 여인 올리브를 만나지 못한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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