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갈망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라이팅 클럽], 강영숙
by 디디의 노블 테라피 Oct 9. 2021
이 책을 읽고나면 자신도 모르게 '글쓰기'에 대한 로망이 싹텄음을, 아니면 정반대로 '글쓰기'의 환상이 깨졌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라도 '글 쓰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치유력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여기 '글쓰기'에 목맨, 그리고 '글쓰기에 목맨 점' 말고는 닮은 점이 거의 없는 모녀가 있다. 보편적인 모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유분방하고 이기적이며 독특한 성격의 엄마(김 작가)와 어릴 적부터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 억울함과 울분이 쌓이고 쌓인 딸(영인).
생계와 딸의 인생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철부지 엄마 때문에 늘 가난하고 불안한 영인은 그 슬픔과 분노를 글쓰기를 통해 해소한다. 끊임없이 읽고 쓰고 또 쓰고, 처절할 정도로 쓰지만 글쓰기는 그녀의 마음처럼 잘되지 않는다.
한편 그녀의 엄마, 김 작가는 (조금 과장하면) 거의 학대 수준으로 딸을 방임하고 자신의 커리어와 연애에만 빠져 지낸다. 종로구 계동의 작고 허름한 집을 빌려 '글짓기 교실'을 열지만, 제대로 된 작법 교실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장소일 뿐이다. 이곳에서 김 작가는 동료 문인들과 술판을 벌이고 남성 수강생과 연애를 하는가 하면 동네 아줌마들을 모아 수다를 떤다.
영인은 지긋지긋한 김 작가와 글짓기 교실로부터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 이일 저일을 해보지만 돈벌이는 쉽지 않고, 글쓰기조차 잘풀리지 않아 괴롭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미국에 간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도 글쓰기만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한다. 이렇게 멀리 타국에서 오직 책과 글쓰기에만 의지한 채 홀로 안간힘을 쓰다보니 어느샌가 그녀에게도 '계동의 글짓기 교실이, 또 철없는 김 작가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 엄마의 그 딸이라는 말이 있던가. 뉴저지의 어느 네일숍에 정착한 그녀는 홍보 전단까지 만들어 '라이팅 클럽' 회원을 모집하고, 그녀 포함 5명으로 구성된 지극히 평범한 아니 어딘가 결핍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인 '라이팅 클럽'이 결성되기에 이른다.
과연 영인이 만든 뉴저지 해컨색의 '라이팅 클럽'은 김 작가가 만든 종로구 계동의 '글짓기 교실'과는 다를까. '라이팅 클럽'의 회원들은 '글짓기 교실'에 모였던 사람들과는 다를까. '라이팅 클럽'은 그녀가 그렇게 무시하고 증오해 마지않던 '글짓기 교실'과 과연 다를 수 있을까.
누구나 내면에 결핍과 상처, 분노와 불안을 차곡차곡 쌓아 가며 살아간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속 앙금들을 배출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살 수 없다. 이 작품은 '글쓰기'라는 배출 방식을 통해 치유될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우습게도 슬프게도 그린다.
아무리 갈망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처럼 잘되지 않는 글쓰기는 우리의 삶과 같고, 아무리 넘어지고 아무리 실패해도 포기할 수는 없는 글쓰기 또한 우리의 인생과 같다. 처절하면서도 웃픈, 이 독특한 모녀의 글쓰기를 향한 삶은 우리 삶의 모습과 많이 닮은 듯하다.
소설 속 모녀처럼 실제 '글'이라는 것을 쓰든 쓰지 않든 간에, 우리가 삶이라는 유한한 종이에 깨알 같은 하루를 애써 새기며 살아간다고 본다면,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동일한 '라이팅 클럽'에 소속된 회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인생 클럽의 회원 대부분은 '글짓기 교실'이나 '라이팅 클럽'의 회원들과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