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집요함과 강인함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정미경

일상에서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쓴 '연극 배우'다. 떨쳐내지 못한 어제가 들러붙고, 반복되는 오늘은 힘겹고, 알 수 없는 내일이 불안해도, 우리는 매일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일상'이 우리의 눈 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세상을 뒤흔드는 위대하거나 혹은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 다음날에도 우리는 먹고 자고 사랑하는 '일상'을 피해갈 수 없다. 우리의 삶이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럼에도 불구하고 징글맞게(?) 돌아오는 '일상'으로 또 다시 돌아가야 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일상은 집요함과 강인함으로 우리를 길들인다" (p.135)

이 짧은 문장은 나를 오래도록 사로잡았다. 우리가 잘 길들여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상'이 집요하고 강인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같다. 인생이란 '그날이 그날' 같은 지리멸렬한 '일상'이 대부분이고 빛나도록 특별한 순간은 한평생 손꼽을 정도이니까. 그런데 지겹도록 반복된다고 해서 '일상'이 수월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권태와 허무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가운데 종종 운명이라는 것이 우리를 조롱하거나 시험에 들게 만든다. 탈출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막상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되돌아가지 못할까 조바심 나게 하고, 고통의 원인이면서 삶의 이유이기도 한, 우리의 '일상'만큼 모순적이고 아이러니한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의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로 '일상'이 부여한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그들은 우리와 많이 닮았다.

총탄과 피비린내가 가득한 내전 국가에서 자식을 잃고서도 "남은 자식과 오늘 하루를 어떻게든 버티면 된다"며 "이상한 생기를 뿜는" 여자(<무화과나무 아래>), 일생동안 벗어 내려놓을 수 없는 가족이라는 굴레에 얽혀 자신의 삶을 잃고서도 가족을 포기할 수 없는 여자(<무언가>, <소년은 울지 않는다>), 자신을 뻔뻔하게 기만하는 연인에 의한 비탄마저 삶으로 받아들이는 여자(<모래폭풍>), 결혼을 약속한 연인에게 배신당하고 월세로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 거리로 나앉게 될 처지에도 내일을 기약하는 여자(<검은 숲에서>), 갑작스런 심장 마비로 숨이 멎는 순간까지 자신을 버린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워 한 기러기 아빠(<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낯설지 않은 그들의 삶을 엿보고 나니,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라는 것이 무섭다. 또 한편으로는 이 무서운(?) '일상'의 한가운데를 온몸으로 통과하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가장 강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삶'과 '인간'의 이중성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냉철한 시선으로 '일상'의 이면을 응시했던, 정미경 작가는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 수록된 단편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에서 이렇게도 말한다. "어떤 고통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일상의 잔인한 영속성을 미옥씨에게서 보았어요."라고.

"일상의 잔인한 영속성". 얼마나 오래도록 사유해야 이러한 통찰에 이를 수 있는 것일까. 또 얼마나 깊이 아파해야 이토록 아름답고도 처연한 문장을 쓸 수 있는 것일까.

"왜 신은 피조물에 좀더 뜨거운 체온을 불어넣어주지 않았을까. 어떡하라고 일생 동안 온기를 구걸하며 살아가게 만들었을까."(p.150)

"어쩌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그건, 피를 흘리면서도 숨을 쉬어야 하기 때문이고 피를 흘리면서도 웃고 또 무언가를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p.264)

"소리를 내어 울 때, 사람은 슬픔, 그것을 위로하기 위해 우는 것이 아니다. 내 귀에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를 위로하기 위해 우는 것이다. 말로는 할 수 없는 위로가 있다. 자신을 달랠 수 있는 건 자신뿐일 때, 그럴 때 제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며 오래 오래 우는 것이다.(p.266)

"뿌리는 진창에 박혀 있어도 가지는 하늘을 향해 꽃을 피우는"(p.320) 연꽃과 닮은 우리의 삶을 이와 같이 그려낸 작품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일생동안 피를 흘리고 온기를 구걸하며 살면서도 숨을 쉬고 웃고 먹어야만 하는' 우리의 삶이 새삼 애처로워 서글프다. 그리고 나를 돌이켜본다. 지리멸렬한 '일상'에 박혀 이도저도 못하고 있는, 나는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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