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고 안부를 전하며

[여덟 편의 안부 인사], 조해진 외 7인

나이가 들면서 '안부'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씁슬해진다. 안부가 궁금한 이는 점점 줄어드는데, 그 안부마저도 선뜻 묻기가 망설여지는 때가 많아지는 것 같아서다. 안부를 묻는 과정에서 나의 안부도 전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지만, 더 솔직하게는 그와 내 안부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불편한 감정을 겪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크다. 상대적 박탈감이든 위로라는 가면을 쓴 위선이든 마음을 심산하게 만드는 건 똑같으니까. 타인의 안부를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라니. '어른'이라고 불리는 나이가 되어서도 이런 옹졸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가 부끄럽고 서글프기까지 하다.

각설하고, 이 책은 앞서 하소연(?)한 '안부'라는 단어에 얽힌 우중충한 의미가 아니다. 8인의 소설가(강영숙, 권여선, 박서련, 오수연, 이승은, 임솔아, 조해진, 하명희)가 신작을 통해 독자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안부를 전하는 소설집이다. 내가 좋아하는 조해진, 권여선 작가의 '안부'가 실렸다니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은 아래 세 작품이다.

#조해진, <혜영의 안부 인사>
자신이 꿈꾸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 자신이 그리던 것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살지 않을까. '혜영' 역시 그렇다. 대학 시절 문예창작을 전공하며 소설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그녀의 현실은 콜센터 상담원. 퇴근하고 소설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다녔지만, 소설은커녕 그저 머릿속을 텅 비게 하는 영상을 보다가 잠들어버리는 생활을 2년간 반복하다 결국 그만둔다. 우연히 대학 동창들을 만난 '혜영'은 서서히 사그라지고 있던 마음속 불씨가 되살아남을 느낀다.

"우리가 어떤 과정 속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 맞느냐고, 혜영은 그렇게 묻고 싶었다.(...)어떤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그 시간이 문장으로 남을 수 있다면 사는 건 시시하지만은 않겠지. 그렇지? 그렇게 써내려가는 동안, 찬우 선배가 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서점의 유리창에는 시를 읽는 한 사람과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얼비쳤고, 그 뒤편으로는 누군가의 설렘과 분노를 숨긴 가을밤이 흘러가고 있었다."(p.68)

조해진 작가다운 소설이다. 두 번 반복해서 읽었다. 고요한 가운데 차오르는 이 충만함을 제대로 표현 못하는 내 얕은 한계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한결같은 작가의 세심한 시선에 위로 받고 아름다운 문장에 메마른 마음이 촉촉해졌다. 이것이야말로 '혜영'이 간절히 쓰고 싶었던, "읽는 이의 삶으로 흡수되는 소설"(p.53)이 아닐까.

#임솔아,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아란과 문경은 언제부턴가 서로에게 이 말을 반복해왔다. 아무것도 아냐. 어떨 때는 미세한 한숨을 섞어 이 말을 했고, 때로는 단호하게 잘라 말하기도 했다. 반복할수록 서로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게 되어갔다."(p.89)

"아무것도 아냐"라는 말로 멀어지게 된 나의 인연들.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생각과 감정을 숨기는 기술이 늘어가는 것 같다. 솔직히 털어놓아도 결국 남는 건 내 몫의 십자가와 외로움뿐임을 아니까. "아무것도 아냐"에 얽힌 우리의 속마음을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잘 그려낸 작품이다.

#권여선, <기억의 왈츠>
육십을 바라보는 주인공이 대학 시절 썸(?)을 탔던 동기와의 기억을 낯설게 되새기는 내용이지만, 나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내가 손쓸 수 없는 까마득한 시공에서 기이할 정도로 새파랗게 젊은 내가 지금의 나로서는 결코 원한 적 없는 방식으로, 원하기는커녕 가장 두려워해 마지않는 방식으로 살았다는 사실이, 내게는 부인할 수도 없지만 믿을 수도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이런 게 놀랍지 않다면 무엇이 놀라울까. 시간이 내 삶에서 나를 이토록 타인처럼, 무력한 관객처럼 만든다는 게."(p.205)

육 년 전 나의 '기억'. 갑작스레 시작된 불행으로 절망에서 허우적거리던 당시의 내가 눈에 선해 한동안 행간을 서성이며 눈시울을 붉혔다. 소설 속 '기억'이 '왈츠'처럼 춤을 추었다면, 나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을 얼룩만을 남긴 것 같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이외에도 #박서련 <A Queen Sized Hole>은 작가 특유의 톡톡 튀면서도 명료한 문체가 인상적이었고, #이승은 <피서 본능>은 불행한 사건이 곧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로 몰아가는 긴장감 넘치는 서사가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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