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잃어버린 것], 서유미
"삶이 지속된다는 것은 무언가를 천천히 잃어가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그걸 알아가는 게 슬프기만 한 건 아니라는 얘기도 나누고 싶었다." (작가의 말, p.174)
지난 십 여 년 동안의 내 삶을 돌이켜보았다. 인생의 새로운 구간에 도착해 처음 맡은 '엄마'라는 낯선 역할을 치열하게 수행하는 동안 잃어버린 것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그리고 반대로 얻은(얻었다고 여겼던) 것들도 헤아려보다가 이내 서글픔과 씁쓸함 등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에 놓이게 된다. 이 작품을 읽으면 절로 그렇게 된다.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것과 또 그 과정에서 여성이 겪는 불안함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작가는 그 시절을 온몸으로 부딪혀 통과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미세한 감정의 결을 이토록 섬세하게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노경주'는 출산 후 복직 대신 퇴직을 선택한다. 육아 경험이 있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처절한(?) 시절을 지나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 시기가 오자 구직활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단녀들이 그렇듯 높기만 한 재취업의 장벽에 그녀는 좌절한다.
"재취업하려면 결국 편의점 알바나 식당, 카페의 서빙과 마트 계산원, 텔레마케터 같은 일을 알아봐야 한다는 현실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비참하게 만드는 대상과 범위가 확장되었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다고 선을 그어왔던 자신의 민얼굴과 마주하는 것이 더 고통스러웠다."(p.126)
막상 맞닥뜨리니 더 냉혹한 현실과 자신의 편견 때문에 경주는 괴롭고 혼란스럽다. 이 장면에서 어쩌면 이런 문장들을 만나기 위해 소설을 읽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감추고 싶고 타인에게는 차마 솔직히 말할 수 없는 날것의 속마음을 소설가가 대신 기민하게 알아주고 정돈된 문장으로 표현한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을 때가 있으니까.
결혼과 출산, 육아로 경주가 잃은 것이 비단 커리어나 직업뿐이겠는가. 다음은 개인적으로도 가장 공감한 부분이다.
"아이를 낳은 뒤에는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았다. 하루 대부분을 지우와 집에 매여있지만 특히 저녁 시간 약속은 더 잡기 어려웠다.(...) 만남의 장소와 방식이 바뀌면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었다.(...) J를 만나면서 가까워진다는 것과 관계를 계속 이어간다는 것, 끝까지 남는 친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p.70)
"삶의 중요한 시기를 지날 때마다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이제 누군가와 가까워질 가능성은 별로 없고 친구라 해도 좋을 만한 관계를 지속해나가는 것도 어려웠다." (p.126)
경주가 평생 유지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우정은 그녀의 결혼 후 흐지부지 옅어지다 사라져버리고, 직장 동료와의 관계도 퇴직 후 맥없이 끊어졌다. 그리고 뒤늦게 가까워진 미혼의 대학친구와의 인연도 서로 다른 상황만을 재확인한 채 어색하게 끝나게 된다. 자신의 처지가 사람들과 달라졌음에 열등감을 갖게 된 그녀는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자신과는 다른 속도와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거절당하기 전에 먼저 달아남으로써 그녀는 자신을 보호한다.
인생의 어느 전환점을 지나면서 주변 사람들이 달라지고 점점 줄어드는 것. 어쩌면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이치일지도 모르지만 참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 나이가 들면서 익숙해진 것도 또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해 울적해졌다.
무언가 쌓이지는 않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게 인생일지라도 남는 것이 있다. "다른 세계로 이동해서 거기에 속한 뒤에야 비로소 지나온 시간과 그때 있었던 일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는 것"(p.83)이 바로 그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만 할 수 있을 뿐인 인간은 직접 그 세계에 들어가 온몸으로 체험해야만 비로소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타인의 아픔과 고통일수록 더욱 그렇다.
사는 동안 잃고 얻고를 반복하는 게 인생인 것 같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얻었을까.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더 잃게 되고 무엇을 더 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