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아 살아간다는 것

[유원], 백온유

누군가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자'가 '살아내는' 이야기.

유원,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다. 유원은 6살 때 겪은 화재사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다. 불길에 휩싸인 아파트 11층에서 자신을 떨어트리고 죽은 언니(당시 17세) 덕분에. 그리고 떨어지는 자신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한 쪽 다리가 불구가 되어버린 아저씨 덕분에. 이 두 사람의 목숨과 인생 덕분에 살아남게 된 그녀가 '마땅한 죄책감'을 갖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런 환경에서 자라왔다면,

"그날 이후 (...) 사람들조차도 기적적으로 살아 남은 나를 위로하고 축복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웃을 때면 생전 처음 보는 풍경처럼 낯설어하고 약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 행복을 바랐다면서도 막상 멀쩡한 나를 볼 때면 워낙 뜻밖이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듯 당황했다."

""얘, 너 그러면 안 돼. 그러면 안돼 너는."
나는 얼어붙었다. (...) 그 말 한마디가 오랫동안 나를 옭아맸다. (...) 그 눈빛 안에, 네가 다른 애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라려고 하면 될 것 같냐는 말이 숨어 있다고 느꼈다."

실제였든 그녀의 죄책감이 부른 오해였든 간에 어린 시절부터 이런 시선을 느끼며 자란 그녀의 '마땅한 죄책감'은 자신을 구한 언니와 아저씨에 대한 증오로 변질되고 결국 살아남은 자신까지 혐오하기에 이른다. 이보다 더 진솔할 수는 없을 것이나 차마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는 없는, 모순투성이의 상처가 또 있을까. 게다가 우연히 가까워지게 된 친구 '수현'의 정체는 안그래도 괴로운 그녀를 운명의 딜레마에 더 깊이 빠지게 만든다.

목숨까지 버리며 자신을 구해준 이들을 생각하면 '그들의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여겨지면서도, 내가 '유원'이었다면 그녀보다 더 괴로워했을 것 같다. 나도 그녀처럼 무언가에 쫓기듯 '나태하게 살아도, 실수를 반복해도 안 된다'는 식의 강박증에 시달렸을 것이다.

가끔 뉴스 등을 통해 작품 속 '언니'와 같은 의인들이 타인의 생명을 구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의인들을 칭송하는 동시에 앞으로 생존자가 지녀야 할 삶의 방식까지 너무나 손쉽게 재단해놓곤 했던, 기존의 내 편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았다.목숨과 바꾼 생명이 지향해야 할 당위와 그 생명이 평생 지고 가야할 마땅한 죄책감 사이에서 고민한 나는, 내 편견을 수정하는 쪽으로 갈피를 잡았다. 그동안 나는 '희생했다'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둔 나머지 '살아남아 살아야한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여겼던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살아보니 적당히 평범하게 사는 것도 너무나 힘든 일인데 두 배의 행복으로, 두 배의 감사함으로, 두 배의 정성으로 살아야만 한다는 부채감을 가지고 사는 삶은 얼마나 까마득하고 버거울까.

다행히 그녀는 가족과 친구의 진심어린 응원, 무엇보다도 아픔을 통한 스스로의 성장의 힘으로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한다. 부디 죄책감과 부채감에서 벗어나 온전한 삶의 주체로 살아가기를.

청소년들이 이 작품을 읽고 '유원'과 함께 아파하고 고민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건, 무척 큰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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