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생애에 "증인"이 되어줄 수 있다면

[완벽한 생애], 조해진

지독한 이별의 경험이 있다. 당시 나이 스물넷, 일방적 이별 통보를 받고 일년 남짓한 시간을 슬픔과 오기가 뒤섞인 눈물로 보냈다. 그 스트레스가 어지간했는지 몸무게가 42kg까지 줄어들 정도였다. 돌이켜보면 그 사랑에 관해서는 나 혼자 유난스러웠던 이별의 과정만 떠오른다. 그 후 만난 한 인연은 2년 넘는 시간을 꽤 진지하게 만났지만 결국 헤어졌다. 그전의 유난했던 기억 때문일까 당시 견뎌낸 이별의 시간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인 대신 속앓이가 길었다. 출퇴근을 반복하고 친구를 만나고 소개팅도 하면서 차근차근 일상을 보냈지만, 마음은 여전히 2년 전에 머물러 있었다. 바닥이 우묵하게 파여 늘 물이 괴어 있는 늪처럼 뭉텅이로 파인 내 마음에는 늘 축축한 슬픔이 괴어 있었다. 영원할 것만 같던 죽은 사랑의 애도가 언제 어떻게 끝났는지는 모르겠다. 이별의 특효약이라는 시간 덕분일까. 다만 사랑한 시간의 배가 넘는 이별의 시간를 감당했던 잔뜩 웅크린 나를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옅게 아려온다. 그런데 정말 이별은 어떻게 끝나고 그 끝에는 무엇이 남는 것일까?


사람의 생애에는 만남과 이별이 있다. 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진다지만 이별은 언제나 아프고 슬프다. 이별을 통과하는 방식은 모두 다른데, 누군가는 비교적 훌훌 털어버리는 반면 스스로를 이별의 늪에 가두고 한없이 침전하는 이들도 있다. "이별에도 만남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 그들의 생애 시곗바늘은 제자리에 멈춰 있거나 때로 회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누구보다도 간절히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다만 느리게 움직일 뿐. 예전의 내가 그랬듯이.


[완벽한 생애]는 이렇듯 만남과 이별에 오랜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일견 "과거 속에서 현재를 사는" 듯 하나, 그렇기에 생애에 더없이 진심인 사람들이다.


"신념을 따르고 사랑에 진심일수록 상처받고 방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신념과 사랑이라는 단어들에 함유된 아름다움이 어째서 우리의 마음을 때때로 더 가난하게 하는지, 나는 늘 그것이 궁금했다."('작가의 말', p.170)


오래된 연인의 가난과 울분에 익숙해져 자신조차 지워버린 '윤주', 석달 남짓 사랑을 나눈 연인과 이별하는데 육년이 필요했던 '시징', 자신과 관계없는 아버지의 과거에 스스로 가책을 느껴 꿈마저 접어버린 '미정'. 이들은 사랑과 신념에 제 전부를 던진 나머지 "과거 속에서 현재를 살"고 있다. 스스로 고집스럽게 놓지 못하는 과거로부터 벗어나고자 살던 곳에서 도망치듯 떠난 이들. 서울에서 제주로, 홍콩에서 서울로. 자신만의 도피를 위해서였지만 우연히 서로의 공간을 잠시 빌려주게 된 그들은 그 낯선 공간 속에서 저마다의 속도로 느리게 유영하며 생애의 아픈 시기를 견뎌낸다.


이별의 끝이 언제이고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어쩌면 '모른다'는 것이 답일지도. 세월이 흘러 생각해보니 만남과 이별에 진심이었던 그 마음 하나면 족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소설 속 인물들처럼 외따로 떨어진 각자의 온기가 희미하게나마 서로에게 닿는다면 더욱 좋을 것이고. 필연적인 힘에 의해 바람과는 반대로 흘러가버린 생애의 일부를 그들은 느리게 걸었다. 그렇게 하면 "영원히 저장해놓을 수 있다는 듯이." 작품 못지 않은 감동적인 발문을 쓴 소설가 최진영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는 종종 사람을 섬에 비유하곤 한다. 섬은 고독하고 반가운 곳이다. 당신이 거기 있으므로 나는 떠날 수 있고, 당신에게로 향할 수 있고(...), [완벽한 생애]는 섬처럼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검은 밤 각자의 등대 빛이 서로에게 가닿는 찰나에 관한 이야기,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생애에 빛을 더하는 이야기, 그 빛의 고요한 위안을 전해주는 소설이다."(p.168)


세상에 '완벽'이라는 상태 자체가 존재할리 만무한데 "완벽한 생애"라니. 반어적 표현임이 분명한 이 말을 작가는 왜 제목으로 삼았을까. 나 같은 독자를 예상했는지 작가는 살뜰하게도 이렇게 답한다.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고 어디로 가는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이 생애의 한가운데서 우리가 서로에게 '살아 있음'의 증인이 되어주기를 희망한다"고.(p.174)


"모든 불완전성을 살아가는" 우리이지만, 진심인 생애 속에서 각자의 온기가 맞닿아 서로의 생애에 "증인"이 되어줄 수 있다면, 어쩌면 "완벽한 생애"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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