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말했어], 김애란
_며칠 전 오후에 있었던 일이다. 엘리베이터는 아파트 꼭대기층에서 내려오는 중이었다. 나는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힐 듯 더워서인지 평소보다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내려오는 것 같았다. 3층, 2층, 1층... 그때 공동 현관문이 열리더니 철제 카트가 끌려오는 소리가 났다. 택배 기사였다. 아니, 기사들이었다. 먼저 엘리베이터에 탄 나는 열림 버튼을 누른 채 그들이 카트를 실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들은 둘이었다. 언뜻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 둘은 같은 브랜드가 새겨진 하얀색 쿨링 토시를 양팔에 끼고, 문양은 같으나 색이 다른 손수건을 목에 두르고 있었다. 내가 20층 버튼을 누르자 남자가 재빨리 3층, 4층, 8층, 13층, 18층, 21층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여자에게 까만 단말기를 건네더니 뭐라고 설명을 했다. 여자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3층 문이 열리자 남자는 미리 선별해놓은 듯 보이는 상자를 능숙하게 바닥 위로 슬라이딩시켜 문 앞까지 도달하게 했다. 여자가 단말기 버튼을 몇 개 눌렀고, 나는 그동안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4층, 8층. 그렇게 남자와 여자, 내가 제 할일(?)을 하는 동안 엘리베이터 안 공기는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셋의 몸에서 뿜어나오는 열기와 땀, 무언가를 견디고 있는 안간힘들 때문에. 덥고 습한 무더위를 견디고, 자기 자신을 견디고, 타인을 견디고, 일상을 견디고, 운명을 견디고, 삶을 견디는, 그 모든 안간힘들 때문에. 나는 빨리 20층에 다다르기만을 기다렸다.
_지금도 생각한다. 내가 20층에서 내린 뒤 그들은 어떻게 했을까. 말다툼을 했을까. 남자가 사과하고 여자의 마음을 달래주었을가. 아니면 그런 일은 먹고사는 문제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쿨하게 신경 쓰지 않았을까. 부부였을까. 가족이었을까. 만약에 나였더라면. 내가 그 여자였더라면. 나는 어땠을까.
13층 배달이 끝난 뒤 카트에서 작은 상자를 집어든 남자가 여자에게 말했다. 이건 네가 해볼래? 작은 상자가 더 어려워. 많이 안 밀려나가거든. 여자는 뒤에 서 있는 나를 의식하는 듯하더니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거기서 멈추면 좋았을 것을. 남자가 재차 말했다. 한 번 해 봐. 자꾸 해봐야 늘지. 여자가 짜증 섞인 투로 작게 말했다. 아, 싫다니까! 18층에 도착했고, 결국 남자가 능숙한 솜씨로 상자를 문 앞까지 쓰윽 밀어넣었다. 나는 20층에서 내렸다. 거북하고 불편하고 무겁고 찝찝하고 씁쓸한 기분으로.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마음으로. 낯설지도 않고 익숙하지도 않은 감정으로. 영영 낯설지 않을 것이고 영영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한 어떤 심정으로.
"그녀가 내 또래라는 걸 앍고부터 더 정중하게 대하려 노력했다. 것도 알량한 태도일지 모르나 그랬다. 아마 나는 미국에서 마주한 노골적인 계급 차에 좀 쩔쩔맸던 것 같다. 물가 낮고 물건 저렴한 건 좋지만, 그걸 만드는 노동력이 싸다는 사실만은 여전히 어색한. 그래서 아무도 추궁 않는 잘못을 해명하는 이처럼 사람 좋게 웃어가며 긴장했다."(p.66)
"그리고 나는 손에 든 책을 보고야 비로소 종일 나를 사로잡은 깊은 상실감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집을 잃어서도, 이웃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p.142)
_또 하나, 소설이기에 가능한 상상의 자유를 흠뻑 누릴 수 있었다. 작가가 러프하게 그린 스케치 안에서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어서 즐거웠다. <홈 파티>에서 나는 마치 감독이라도 된듯, 여러 버전의 '이연'과 '오대표'를 그려보았는데, 작품이 주는 묵직한 메시지와는 별개로, 정말이지 숨이 멎을 듯 짜릿했다.
"그런 뒤 오대표는 이연에게 갑자기 이상한 걸 물었다.
- 오늘 어땠어요?
(...)
- 좋았어요.
-.....
- 너무너무 좋았어요, 정말."(p.43)
"이연은 넋 나간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하며 오대표의 옆얼굴을 살피다 문득 몸이 굳었다. 오대표의 얼굴에 잔을 잃은 서운함이나 원망 대신 묘한 만족감이라 할까 승리감이 얼핏 스치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전혀 놀란 기색 없이 마치 오늘 파티에서 얻을 건 다 얻었다는, 이만하면 괜찮은 계산서가 나왔다는 표정을 지은 까닭이다."(p.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