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노이의 불평], 필립 로스
_상상을 해본다. 나는 꽤 유능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다. 오은영 박사처럼. 출근길. 따뜻한 커피가 든 텀블러를 들고 병원 문을 연다. 신뢰감을 주는 깔끔하고 맵시 있는 옷차림. 좋은 아침! 명랑한 말투로 간호사에게 인사한 뒤 진료실로 들어간다. 떡갈나무로 주문제작한 책장이 한쪽 벽면을 길게 차지하고 있다. 각종 정신분석 관련 서적, 심리학 서적이 빽빽히 꽂혀 있고, 중간중간에 각종 감사패, 상장, 의사면허증 같은 것들이 놓여 있다. 블라인드가 반쯤 내려진 창문으로는 적당량의 아침 햇살이 들어오고 진료실 기온 또한 쾌적하다.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함과 안도감을 주는 공간. 책장과 함께 맞춘 한 칸짜리 옷장을 열어 핸드백을 넣고 의사 가운을 걸친다. 책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컴퓨터를 켠다. 컴퓨터가 켜지는 동안 책상 위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점검한다. 진료 프로그램을 열고 오늘 만나야 할 예약 환자 명단을 확인한다. 우리 병원은 철저한 예약제로 운영된다. 명단을 하나씩 확인하다 한 이름에서 멈춘다. 앨릭잰더 포트노이. 단지 문자화 된 이름만 봤을 뿐인데 뒷목이 뻐근해지면서 묵직한 피로가 몰려온다. 벌써 퇴근하고 싶다. 유능한 의사로서 이러면 안 되지만, 정말이지, 집에 가고 싶다.
_최고의 불평꾼, 앨릭잰더 포트노이. 진료실 의자에 앉자마자 시작되는 "선생님, 말씀 좀 해주세요." 이토록 유창하고 막힘없고 끝없는 불평불만은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게다가 심각한 성도착증 환자인 그는 자신의 광적인 섹스 편력을 적나라하고도 생생하게 발설한다. 그때마다 나는 못마땅한(때로 혐오스러운) 표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속으로 되새긴다. 나는 의사다. 나는 여자이지만 의사고, 그는 환자다. 도움이 절박해 나를 찾아온 환자다.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다. 나는 그를 이해해야 하고, 이해함으로써 도와주어야 한다. 다행히 그는 매우 영리하고 솔직하고, 무엇보다 유머가 넘친다. 절박한 심정으로 열변을 토해내는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웃음을 터트리지 않기 위해 슬픈 생각을 떠올리며 허벅지를 꼬집은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모른다. 정말로 재미있다. 웃긴다.
사실, 고백하건데,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급격히 피로해지는 이유가 따로 있다. 나는 그에게서 나를 본다. 살아서 펄펄 날뛰는 자기애, 자기연민, 자기성찰, 그리고 그 못지 않게 시뻘건 피를 철철 흘리는 자기조롱, 자기비하, 자기혐오, 자기파괴, 그리고 역시 그 못지 않은 서슬 시퍼런 양심, 죄책감, 수치심, 도덕심. 이 모든 것들이 한데 뒤얽힌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를 볼 때마다 나는 거울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럴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의사이니까 그를 보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더 솔직하게는 그에게서 내가 보이니까, 그가 곧 나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야이기를 더 듣고 싶다. 차마 내 입으로는 내뱉을 수 없는 말을 대신 속시원히 해주니까 그가 계속 이야기를 해주기를 바란다. 언제까지나 내 환자로, 불편불만쟁이 포트노이로 남아주면 좋겠다.
_이해할 수 없는 포트노이를 이해해야 하고 이해할 수밖에 없고 이해하고 싶으니까. 이해할 수 없는 나를 이해해야 하고 이해할 수밖에 없고, 너무나 이해하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