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닮은 소설

[여름밤 해변의 무무씨], 조해진

_나와 다른 소설을 만났을 때 나는 감전이라도 된 듯 온몸이 굳어버린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생각할 생각조차 못했던,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만났을 때, 그리고 그로 인해 어떤 방식으로든 자극을 받아 감정이 벅차오르게 되면,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어진다. 관용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 그때의 난 숨마저 안 쉰다. 숨쉬기를 잊어버린 사람처럼.


나와 닮은 소설을 만났을 땐 얼어붙는다. 꼼짝할 수 없다는 면에서는 나와 다른 소설을 만났을 때와 증상(?)이 흡사하다. 나를 둘러싼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이때의 나는 심호흡을 자주 한다. 의식적으로 깊이 들이마시고 길게 내쉰다. 그러면서 착각에 빠져든다. 소설이 내쉬는 숨과 내가 내쉬는 숨이 만났고, 만남의 장소는 나의 안과 밖 어디든 상관없으며, 마침내 내가 녹아버렸다는 착각. 액체가 된 나는 작은 자극에도 출렁거리고 어떤 물질과도 잘 섞이며, 그 결과 이전의 나와는 다른 성질의 내가 된 듯한 착각. 착각은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이 소설을 읽기 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깨달음으로. 실제로 나는 생생히 실감한다. 소설을 읽기 전과 후의 나는 백 퍼센트 동일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_아픈 삶과 아픈 사람을 돌보는 삶. 결국 아프게 될 모두의 삶. 수용과 체념을 일생의 과업으로 삼게 된 삶. 10년,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내가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삶의 주제들이다. 그러니 그동안 보물찾기하는 심정으로 이런 이야기들을 수집하게 된 건 인과율에 의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질병과 장애에 관한 이야기. 아픈 사람이 쓴 이야기. 장애인이 쓴 이야기. 아픈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 쓴 이야기. 장애인을 돌보는 사람이 쓴 이야기. 그러니까 직접 겪어본 이들의 증언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결코 알 수 없는 낯선 세계에 관한 이야기. 나에게는 어떤 지독한 갈증 같은 것에 이끌려 구한 이야기. 하루 씩 연명하게 해주었다는 의미에서 천일야화와 같은 이야기. 나는, 내 딸아이는, 완전히 고립된 게 아니라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아 세상에 드러나진 않지만 어딘가에서 분명 존재하는 이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준 이야기.


'김은희', '김서아‘, ’최미숙' 그리고 '무무 씨'. 이들의 이야기는 내게 그런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그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 내가 쉴 새 없이 출렁거리며 심호흡을 할 수 있게 이끌어준 또 하나의 이야기라는 말이다.


_내 삶의 주제를 다룬 소설을 만나면, 특히 나의 주제를 관심사로 삼은 작가를 만나면 반갑다. 더욱이 그 작가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갑다. 게다가 내가 이미 몇 번씩 읽은 귀한 책들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을 썼다니 나에게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있을까. 작가에게 고맙다. 이번에도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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