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데본 사람만이 불을 아는 법이다."

[어른의 미래], 편혜영

_언제부턴가 나는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거의 매순간. 예를 들어 목적지로 가는 여러 방법이 있다고 하자. 고민의 시간을 거친 뒤 나는 버스편을 이용하기로 선택한다. 빠르게 달리는 고속도로 위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 혹시 교통사고라도 나면 어떡하지. 그냥 기차를 타고 갈 걸 그랬나. 이런 생각도 있다. 길 위에서 저기 마주 오는 사람이 흉기 난동을 부리면 어떡하지. 방금 스쳐지나간 사람이 갑자기 뒤에서 나를 공격하면 어떡하지. 그냥 다른 길로 갈 걸 그랬나. 아니, 집에서 나오지 말 걸 그랬나 봐. 또 이런 생각은 어떤가. 아이와 말다툼을 하다가 분에 못이겨 마음에도 없는 독설을 한다. 그 뒤 학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아이를 냉정하게 못본 척한다. 그런 다음 생각한다. 혹시 학원이 있는 건물에 불이라도 나서 아이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아이와의 마지막 기억이 내 독설이 되면 어떡하지. 조금만 아이를 따뜻하게 대할 걸. 또 다른 생각. 친구분들과 일본 여행을 떠난 부모님이 타신 비행기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흔하진 않지만 비행기 사고가 나기도 하잖아. 혹시 지금 당장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난카이 대지진이 일어나면 어떡하지. 또 친구와 긴 수다를 떨고 기분 좋게 전화를 끊은 뒤 드는 이런 생각은. 혹시 내가 말실수라도 한 거 아닐까. 내가 농담으로 던진 말에 친구 마음이 상했으면 어떡하지. 역시 그런 말은 하면 안 되는 거였어...등등.


실제로 나는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거의 매순간 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고 거짓말은 더더욱 아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그 정도면 병 아니야? 동의한다. 그래서 피곤하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들러붙는 이런저런 걱정과 기우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에너지를 허비하느라 몹시 고단하다. 어쩔 수 없다. 이런 내가 도무지 제어가 안 된다. 이럴 때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운과 불행을 끌어당기는 자석이라도 된 듯한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머릿속에 온갖 불길한 상상이 다 든다. 그러면서도 생활을 그럭저럭 꾸려나가기는 한다. 이런 생각의 대부분은 결국 기우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경험치를 바탕으로 일상을 이어나간다.


"불에 데본 사람만이 불을 아는 법이다. 그게 경험이라는 것이다."(p.129)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어릴 적부터 예민하고 소심하고 걱정 많은 성격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곰곰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십 년 전 어느 여름날 아침에 가닿는다. 전생과 이생으로 나누고 싶을 만큼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버린 그날. 베란다 창으로 쏟아졌던 아침 햇살의 눈부심과 피부에 닿는 따스함까지 생생히 기억나는 그날. 그러니까 어느 날 갑자기 맞닥뜨린 하나의 사건 혹은 사고로 인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아버린 이후 - 마치 총을 맞은 것 같은 사건 이후로 - 나는 달라졌다. 그게 맞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맞다. 그날 이후로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졌다.


_감히 말하자면, <어른의 미래>는 이런 나 같은 책이다. 녹록치 않은 삶의 이런저런 맛을 다 겪어본 이들이 지금 자신이 내딛은 한 발이 어디로 이어질지 몰라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그럼에도 어찌 됐든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우리 현대인 모두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는 말이다.


_""비가 여전히 많이 오네요."

"그러네요"

(...)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엄마가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는 사이 그가 말을 이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비가 더 많이 와요. 그럴 때가 있겠지만 우산도 꼭 쓰고 신발도 잘 말려 신으면 됩니다.""(p.161)


"자랄 것은 자라고 시들 것은 서서히 시들어갔다. 이제 그녀는 자라고 시들고 열매 맺고 죽는 것이 제각각임을, 무질서가 삶의 유일한 질서임을 알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운이 나빠서 궂은일을 겪는 게 아니라는 생각. 사람은 그저 운이 좋은 경우에나 겨우 궂은일을 피할 수 있었다."(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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