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순수하고 아름다운.

[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_1981년 12월 31일에 태어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주관이라고는 1도 없이 살았다. 집 앞에 고등학교를 두고도 친구들 따라 지하철로 5정거장을 가야 하는 여고를 지원했고, 수학을 싫어하고 못하는데도 친구들 따라 이과를 선택해 수학2, 물리2 같은 과목 때문에 내신을 망쳤고, 좋아하는 게 뭔지, 하고 싶은 게 뭔지 생각하지도 않고 수능 점수에 맞춰 관심도 없는 경제학과에 들어갔고, 취업할 때쯤 안정적인 직업이 최고라는 시대 흐름에 떠밀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서 운 좋게 공무원이 됐고, 성격에 전혀 맞지 않았지만 책임감이 강했으므로 성실히 일을 했고,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결혼 적령기가 되자 지금의 남편과 서둘러(?)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몇 년 뒤 난데없이 찾아온 불행과 시련을 맞았고… 어쨌든 이렇게 나열하니 그녀는 착하고 착실하게 살아온 듯 보인다. 때론 운이 좋았고 때론 운이 나빴지만, 그녀의 삶은 큰 흐름에서 볼 때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평범한 삶의 궤적을 따라 흘러갔다.


마흔 즈음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고 이왕이면 잘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읽고 쓰기. 깊게 읽고 깊게 쓰기. 잘 읽고 잘 쓰기. 늦은 나이에 발동이 걸린 그녀의 욕구는 갈수록 커졌고, 급기야 소설을 쓰겠다는 무모하고도 당돌한 욕심을 품었다. 3년 남짓 도전을 했고, 그리고… 어쨌든 읽기 만큼은 계속하고 있다. 책은 읽을수록 좋고 몇 번이든 다시 태어나게 하니까.


어느날 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을 만드는 일은 어떨까. 편집자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 책을 만드는 기분은 어떨까. 자신이 창작에 걸맞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창작에는 티끌 만큼도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뼈아프게 자각한 뒤의 일이었다. 전에는 관심조차 없었지만 언제부터인가 판권면을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지은이 아래로 나열된 이름들. 책임편집, 편집, 디자인, 마케팅…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피땀눈물을 쏟아부었을 그 이름들을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그녀는 상상해본다. 편집자로서 자신의 이름이 속해 있는 것을. 지은이가 될 수 없다면 아니, 지은이는 될 수 없으니. 그렇게라도. 상상은 자유이니까. 상상은 이어진다. 이상한 후회로. 경제학과가 아니라 국문과를 갈 걸 그랬어. 여고시절 문학 과목을 가장 좋아하는 나름 문학소녀였는데. 다른 직업은 알아보지도 않고 남들이 다 한다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아니었어. 그때라도 좋아하는 게 뭔지 진지하게 고민해볼걸. 생각할수록 후회스럽다. 마치 국문과로 진학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분명 소설가나 편집자가 되었을 거라는 듯 확신에 차서 말이다. 상상과 마찬가지로 뒤늦은 후회도, 말도 안 되는 확신도 자유이니까.


_그런 상상과 후회와 확신에 따라 품게 된, 역시 말도 안 되는 한(恨)을 그녀는 ‘석주’를 통해 풀었다. 읽고 쓰기를 좋아하고 작가를 꿈꿨으나 편집자가 되어 어느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책을 만드는 ‘석주’의 마음과 말과 행동에 완전히 이입되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만큼은 그녀는 ‘석주‘였다. 편집자로서 ‘석주’의 행적을 눈으로 좇는 게 아니라 ‘석주’가 되어 읽고 쓰고 말하고 움직였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그녀는 헤아려 보았다. 소설에서 이토록 진실되고 순도 높은 인물을 만난 게 얼마만이었더라. 이토록 순수하고 아름다운.


_어디선가 스치듯 <스토너>가 떠올랐다는 리뷰를 보았는데, 나 역시 그렇다. 일대기 형식이라든가 문학에 진심인 주인공이라든가. 그래서였을까. 나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게 됐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나의 일대기(?)로 글을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다. ‘스토너’와 ‘석주’의 어떤 면에서 이상하게도 내가 보였다. 수백분의 일 정도는 닮은 듯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내가 마흔 넘어서야 알게 된 것-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읽고 쓰기-을 그들은 나 대신 열렬히 사랑했고 성심껏 애썼으며 끝까지 지켜주었다. 나를 대신하여 그들이. 그토록 애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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