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이상하고 경이로운지.

[절창], 구병모

_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내 마음인데도 모르겠고, 내 마음인데도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내가 나인데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는 것은. 그러니 타인이나 세상에 대해서라면 뭐, 말할 것도 없다. 어떻게 보면 모르는 것에서 멈춘다면 다행이다. 어떤 면에서는 차라리 완전한 무지가 더 낫다. 어설픈 앎을 바탕으로 넘겨짚고 오해하고 착오하는 것보다는. 얕디 얕은 앎을 이해 혹은 공감으로 착각하는 것보다는. 아는 것은 힘일까, 모르는 게 약일까.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르겠고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나는 삼십 중반에 이르러서야 '진짜 사람'이 되었다. 부끄럽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그 무렵 느닷없이 맞닥뜨린 불행을 온몸으로 통과하면서, 나는 '진짜 사람'이 되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감잡을 수 있었다. 마흔 즈음엔 내가 누구인지 알 것 같다는 착각과 오만에 잠시 빠지기도 했으나, 마흔 중반 고개를 지나는 요즘의 나는 내가 날마다 (굳이 좋게 표현하자면)새롭다. 너무 새로워서 미칠 지경이다. 사춘기를 신나게 지나고 있는 딸아이와 매일 지지고 볶는 나를 보며 자주 놀란다. 소스라칠 정도로. 분노와 증오와 울화의 화신이 현신한다면 바로 내가 아닐까. 내 안에 이런 내가 있었다니. 이런 내가 나라는 말인가. 이런 나도 나라고 인정해야 하는가. 앞의 말을 정정해야겠다.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진짜 사람'이 되려면. '진짜 사람'이 되는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아무튼, 타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본모습을 확인하고 싶다면 그를 고난과 역경 속에 던져 놓으면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세상일이 순조롭게 잘 풀린다고 착각했을 땐, 아직 불행이 찾아오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아직 "상처"를 입지 않았을 때의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나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도 몰랐고, 세상도 몰랐다. 그러고도 어떻게 용케 살아남았는지 신기할 정도다. 어쨌든 그렇다면, 크고작은 풍파와 굴곡을 맛보고 "상처"를 입은 지금의 나는 뭐라도 좀 알게 되었을까? 아니다. 여전히 모르겠다. 알다가도 모르겠고, 모르겠는 건 진짜 모르겠고, 어떨 땐 알고 싶지도 않고, 계속 모르고만 싶다.


_하지만 살다 보니, 정확하게는 "상처"를 입고, "상처" 속에서 살아가면서 확실히 알게 된 것도 있다. 진짜 앎과 이해는 "상처"에서 비롯된다는 것. 다시 말해 진정한 사랑은 불행, 고통, 비애의 무덤 속에서 발아할 수 있다는 것. 조금이라도 알고 싶고, 그나마라도 이해하고 싶다면 "상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 설령 시뻘건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일지라도. 외면하지 않고 "상처"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담그는 일. 그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상처"의 복판에 들어가 있다. 그게 자신의 "상처"이든, 타인의 "상처"이든, 세상의 "상처"이든. "상처"를 가지고도 우리는 "상처" 속으로 들어간다. 또다시 "상처"를 입게 되리라 예상하면서도 살아간다. 대상이 무엇이든 진정으로 알고 이해하고 싶어서, 진실로 사랑하고 싶어서. 그러니 우리 모두는 얼마나 이상하고 경이로운 존재인지. 이러한 존재들로 이루어진 세상은 또 얼마나 이상하고 경이로운지.


_"어쩌면 인간이란 서로의 사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암실 속에서 서로를 보고 듣고 헤아린다는 착각과 함께 살아가는 유기체적 현상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p.63)


"그리고 무엇보다 달라진 건, 누군가를 읽어내는 데 예전보다 더 크고 더 깊은, 때로는 치명상에 가깝다고 할 상처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는 점이야."(p.279)


"우리는 불이해 혹은 오해를 이해인 양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게 고작이야. 이해란 자기만족에 불과할 수 있고, 나의 이해와 타인의 이해는 서로 달라서 둘의 이해가 충돌하게 마련이니까."(p.301)


"상처 없는 관계라는 게 일찍이 존재나 하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상처는 사랑의 누룩이며, 이제 나는 상처를 원경으로 삼지 않은 사랑이라는 걸 더는 알지 못하게 되었다. 상처는 필연이고 용서는 선택이지만, 어쩌면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봄으로 인해, 상처를 만짐으로 인해, 상처를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세상에는 있는지도 모르겠다고."(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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