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구름에서 쉬어 가요."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이장욱

_오션 뷰라고는 하지만, 객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해안가의 바위와 방파제와 방파제 근처의 폐건물과 멀리 수평선 쪽으로 솟아 있는 크레인이 다인 여관, '해변 여관'.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곧 칠월이 되면 45도에 이르는 폭염이 닥칠 것이고 해안선 침식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이며 국경에서 국지전이 빈발하고 있어 최악의 경우 전면적이 시작될 것이라는. 지금은 유월. 뜨거운 공기가 폐로 스며들고 무거운 바람이 분다. 바다는 아침이면 방파제를 넘어 해안 도로로 조금씩 밀려들었다가 오후가 되면 다시 바다로 돌아가고 해 질 녘에는 검은 물과 흐릿한 하늘과 사물의 윤곽만 보이다가 밤이 되면 검고 검어서 보이지 않는다.


_그곳에 내가 있다. 203호 객실 창가에 서서 해안가의 바위와 방파제와 방파제 근처의 폐건물과 멀리 수평선 쪽으로 솟아 있는 크레인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침대 모서리에 앉아 잠시 그대로 앉아 있는다. 뜨거운 햇빛이 구석 자리까지 스며들고 있다. 덥다. 숨이 막힐 듯 덥다.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끈 뒤 객실을 나간다. 대낮이지만 그늘에 잠겨 어두운 계단을 올라 옥상으로 나간다. 바람은 희미하고 그나마 불어오는 바람도 뜨겁지만 어쩐지 나는 이제 조금 살 것 같다고 느낀다. 어디선가 담배 냄새가 난다. 몇 발자국 걸음을 옮기니 바다 쪽을 바라보며 나란히 선 채로 담배를 피우는 여자와 남자가 보인다. 밝은 갈색으로 탈색한 머리와 새로 자란 검은 머리가 뒤섞인 부스스한 머리를 하나로 묶은 왜소한 체형의 여자와 큰 키에 팔다리가 길고 호리호리한 체형의 남자. 남자는 검은색 볼캡을 쓰고 있다. 둘은 비슷한 자세로 담배를 피운다. 옥상 난간에 팔을 괴고 서서 오른쪽 발과 왼쪽 발을 교차시킨 채. 내 기척을 느꼈는지 둘은 고개만 살짝 돌려 나를 힐끗 보고는 무심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돌린다. 역시. 열흘 째 투숙중인 나는 며칠 전에도, 그제도, 어제도,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와 남자를 보았다. 둘은 나에게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간 내가 옆에 한참을 서 있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저 담배만 피울 뿐이다. 마치 담배를 빨아들이고 연기를 내뿜는 것이 유일한 할일이라도 되는 듯이. 다 피운 담배를 재털이로 쓰는 커다란 빈 화분에 던져넣고도 그들은 한참을 말없이 서 있는다. 안도감을 느낀 나는 그들 옆에 서서 며칠 전에도, 그제도, 어제도, 조금 전에도 보았던 해안가의 바위와 방파제와 방파제 근처의 폐건물과 멀리 수평선 쪽으로 솟아 있는 크레인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나를 사로잡은 상실과 슬픔과 허무와 체념에 대해서. 그러다가 내 옆에 선 이들에게로 생각이 이어진다. 그러지 않기로 했지만 잠시 헤아려만 보는 것일 뿐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 둘은 어떤 사이일까. 둘은 삶의 무엇에 사로잡혔기에 지금 여기 내 옆에 있게 되었을까. 그 사이 둘은 지금 몇 번째일지 모를 담배를 한 대 더 피우고 있다. 여전히 같은 자세로. 나는 뜨겁고 무거운 유월의 바람에 희미하게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다 천천히 눈길을 돌린다. 열흘 전에도, 며칠 전에도, 그제도, 어제도, 조금 전에도 보았던 해안가의 바위와 방파제와 방파제 근처의 폐건물과 멀리 수평선 쪽으로 솟아 있는 크레인 쪽으로.


_지금까지의 내용은 대부분 소설을 그대로 인용하였고, 아주 조금 내 마음대로 변형시켜 본 것이다.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에서. 그들의 삶이, 그들이 사로잡혀 중독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소설을 읽어보시길. 소설적인 이야기가 소설적으로 펼쳐져 있음을 소설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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