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남들의 세계사], 이기호
_타인의 감정을 헤아리는 데 상상력이 더 필요한 쪽은 슬픔이나 고통이다. 기쁨이나 환희, 행복감 같은 타인의 감정은, 이상하게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설령 그게 쉽지 않더라도 우리는 개의치 않는다. 다시 말해 누군가의 기쁨과 행복감에 감응하고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무력감을 느낀다든가 죄책감에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고통이 크실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경우는 많아도, '얼마나 행복하실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하고 말하지는 않지 않은가.
슬픔이나 고통은 다르다.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헤아리기 위해 우리는 갖가지 애를 쓴다.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럼에도 견디고 버티느라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까. 이런 짐작으로도 부족하면(당연히 부족하기 마련이다) 상상력을 더 발휘해야 한다. 저이가 아니라 나였다면. 저이가 아니라 내 가족이나 친구일 수도 있었는데. 이런 비유를 끌어와서야, 그러니까 타인의 아픔을 내 것이라고 가정하고 상상했을 때에야, 일부 이해하고 조금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내처 더 나아가, 그 아픔과 고통이 내포한 맥락과 인과와 서사를 알게 된다면, 그제야 비로소 타인과 나를 포개어 볼 수 있게 된다. 어쩌면 다함께 잘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풍부한 상상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행운과도 같은 풍부한 상상력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행운이고 축복이기 때문에. 또한 나를 이루는 맥락과 인과와 서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타인의 것을 알 수 있다? 이 또한 어렵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소설이 필요하다. 웹소설도 영화도 드라마도 애니메이션도 웹툰도 만화도 또...아무튼 인물과 사건과 배경과 맥락과 인과와 서사를 가진 이야기가. 타인의 고통에 뼈대를 세우고 피부를 입히고 지방을 채우고 기질과 감정과 가치관을 부여해 그것이 먹고 일하고 자고 울고 웃으면서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이야기가. 고통이 구체적인 얼굴과 이름과 맥락을 가지면 우리는 외면하기 힘들다. 피하기는커녕 가까이 다가가고 싶고 더 알고 싶다. 기꺼이 맞닿아 깊이 헤아리고 싶다.
_여기, 얼굴과 이름과 맥락을 가진 주인공 '나복만'이 있다. 사실 작품 속에서 '나복만' 같은 주인공은 많다. 소설 <소년이 온다>의 '동호', 영화 <택시운전사>의 '만섭'... 개인과 사회는 한몸이라는 사실을 얼굴과 이름과 맥락과 서사로 증명하는 주인공들. 그래서 외면할 수 없고 기꺼이 맞닿고 싶은 주인공들. '나복만'은 조금 특별하다. 이기호 작가만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유머와 위트와 재치 덕분에 그가 더욱 애틋하게 여겨진다. 소설을 읽으며 웃다가 인상을 찌푸렸다가 한숨을 쉬다가 울다가 욕설을 내뱉다가 다시 울다가 웃었을 뿐인데, 그 시절의 아픔과 슬픔과 고통에 아주 조금 맞닿아 포개어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
_정말이지, '소설만세'다. 사랑합니다,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