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적이다

[캐럴], 이장욱

_한동안 고민했다. 이 글을 남겨야 할까.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부끄러운 일인데. 그렇게 창피하면 굳이 기록하지 않으면 되잖아. 그러면 되는데 뭘 고민해. 두 번 읽었음에도 줄거리조차 이해할 수 없고 인물들에게 이입될 수도 없었는데. 그런 소설에 대해 무슨 감상을 남길 수 있겠어. 사실 이런 적이 처음도 아니잖아. 부끄럽지만 같은 이유로 감상을 남기지 않은 소설도 몇 편 있었잖아. 어차피 자기위안 목적으로 남겨 두는 기록일 뿐인데, 뭐. 그래, 쓰지 말자. 안 쓰면 되지. 그런데 뭐지? 그럼에도, 뭐라도 쓰고 싶은, 아니, 꼭 써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은 뭐지? 그러므로(?) 이 글은, 이런 뻔뻔하고 몰염치한 기분으로 어쩔 수 없이(?) 쓰게 되었음을 밝힌다. 한마디로, 허섭하기 짝이 없는 데다 지극히 이기적인 글이라는 말이다.

_소설적이다. 소설적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소설적이다. 이장욱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면 떠오르는 생각이다. 아니, 생각보다는 직감에 가까운 느낌이다. 이게 무슨 멍청한 소리냐고, 소설이니까 소설적인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누군가 핀잔한다면, 할 말은 없다. 소설은 소설적이고, 소설적이어야 소설이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된다. 소설적이다. 실제로 입을 벙긋거리며 이 다섯 글자를 작게 발음한다. 이런 상황을 만화로 그린다면 작가의 소설을 손에 든 내 옆에는 동그란 말풍선이 달려 있을 것이다. 소설적이다, 라는 다섯 글자가 담긴 말풍선이. 사실 솔직히 말하면, 부족한 내 소양 탓임이 분명하지만, 나는 <캐롤>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누구에게도 공감할 수 없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오가는 구성 또한 잘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런데도 참 이상하다. '공감할 수 없음'과 '이해할 수 없음'이 '소설적이다'라는 압도적인 느낌으로 조합된 채 귀결되었다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은 - 이상하다 못해 괴이한 것은 - 이런 '소설적이다'라는 느낌이 소설을 쓰고 싶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 강렬한 느낌은 내내 이해하지 못한 채로 읽어가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게 했다. 나도 인물을 쓰고 싶다. 나도 사건을 쓰고 싶다. 나도 배경을 쓰고 싶다. 나도 플롯을 쓰고 싶다. 나도 행간을 쓰고 싶다. 나도 여백을 쓰고 싶다. 나도 문체를 쓰고 싶다. 나도 뉘앙스를 쓰고 싶다. 나도 분위기를 쓰고 싶다.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 정말이지 쓰고 싶다. 간절히 쓰고 싶다. 그러면 쓰면 되잖아. 그런데 쓸 수 있을까. 하지만 쓸 수 없을 것 같아. 그러게, 쓸 수 없을 거야. 그래도 쓸 수 있게 되면 좋겠어. 그러면 쓰면 되잖아. 그런데 쓸 수 있을까. 하지만 쓸 수 없을 것 같아. 그러게, 못 쓸 거야. 그래도 간절히 쓰고 싶어. 그러면 쓰면 되잖아.....아, 어처구니 없음과 자괴감과 무력함과 못남과 징글징글함이 가득한 돌림노래. 나는 이 돌림노래를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이 지긋지긋한 악보의 마지막 마디 위에 Fine를 작게 표기하게 될 날을 또 맞이할 수 있을까. 나도. 이런 나도. 또 다시.

_그러므로(?) 하고 싶은 말은 "소설만세"라는 거다. '소설적이다' 또한 만세다. 언제나 짝사랑에 머물지만, 사랑합니다. 격하게 아낍니다,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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