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클레어 키건
_분위기로 기억되고 인상(印象)으로 남는 것들이 있다. 그냥 저절로 마음속에 새겨지는 거다. 느낌이나 감각이나 뉘앙스로.
_바람에 일제히 흔들리는 낮은 채도의 초록 들판, 흰색에 가까운 희뿌연 하늘, 거친 파도가 치는 회색빛 바다, 무채색 옷을 입고 차분한 표정으로 독한 셰리주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 아일랜드는 나에게 이런 인상으로 새겨져 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소설과 영화의 영향이 컸는데, 윌리엄 트레버와 클레어 키건의 소설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막연히 그려본 이미지는 영화 <이니셰린의 벤시>, <말 없는 소녀>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_작가의 첫 단편집 <남극>은 이런 분위기나 느낌 그 자체였다. 춥고 흐린 날 찍은 필름사진처럼 명도와 채도가 조금씩 낮은 처연하고 가라앉은 분위기. 어딘지 비밀스럽고 묘한 느낌. 많은 말을 담고 있는 말줄임표와 쉼표인줄 알았는데 결국 마침표였던 뉘앙스. 먼저 읽은 작가의 다른 소설들에선 인물의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선에 온통 집중되었다면, 이번에는 분위기와 뉘앙스에 폭 빠져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