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속으로, 기꺼이.

[고의는 아니지만], 구명모

_"정신이 들었을 때 각색의 구두 신은 발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구두코들이 자신을 향해 둥근 호를 그리며 모여 있어서 그는 구두 가죽에 감춰진 고깃덩어리들이 자신을 밟으러 돌진해 온다는 착시에 순간 시달렸다. 실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그저 호기심과 머뭇거림이 그를 둘러싸고 있을 뿐이었다. 이 시점에서 그의 궁금증은 자신이 어쩌다 정신을 잃었으며 언제 어디서 필름이 끊겼는지가 아니라, 누웠거나 엎어지지 않고 일어서 있는 자신의 눈높이가 어째서 고작 사람들의 발목에 머물러 있는지였다.

괜찮으세요? 정신 들어요? 눈앞을 둘러싼 몇 개의 발에서 물음들이 쏟아져 나왔고 곧이어 그는 쭈그려 앉아 자신에게로 눈높이를 맞추어 주는 사람들의 동정심 가득하면서도 아연실색한 눈빛들을 둘러보았는데, 그 눈둘은 그가 얼마나 난감하고 비상식적인 상황에 놓였는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두려움과 불행과 우려가 사람들의 목소리와 눈빛을 입고 그에게로 쏟아져내렸고 그중 일부는 그가 행위예술을 하는 중인지도 모르니 건드려선 안된다고 말하기도 했다."(p.136, <타자의 탄생> 중)


_말 그대로 흥미진진하다. 그야말로 흥미가 흘러넘쳐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바짝 정신을 집중하게끔 한다. 분명 상상이 가미된 비현실적인 상황임을 인지하고 있으나 더없이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로 인해 이게 현실인지 환상인지 혼동될 때가 잦았다. 여기서 '혼동'은 현실과 환상이 '구별되지 못하고 뒤섞이'는 데서 비롯하는 단순한 혼란에 머물지 않는다. 이 가차없는 세상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아니 애초에 옳고 그름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할 수 있는지. 그는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 그를 그런 식으로 몰고 간 것은 무엇인지, 그런 그를 탓하거나 나무랄 수 있는 자격이 우리에게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작동하고 있는 이 세계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어디로든 나아가고 있는 건지, 멈춰 있는 건지, 아니면 후퇴하고 있는 건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기꺼이 그 혼란에 빠지고 싶다. 골치 아프고 어지럽기까지 해도 괜찮다. 현실과 환상이 기괴하면서도 아름답게 뒤섞인 여덟 편의 소설은 우리를 이끈다. 팔딱팔딱 살아 숨쉬는 혼란 속으로.


_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앞서 인용한 <타자의 탄생>의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쩐지 '그레고리 잠자'가 연상되게 하는 '그'의 사연이 궁금하다면, 소설을 읽어보기를. 그리고 기괴하고 아름답고 생생한 혼란이 선사하는 경이로움에 흠뻑 빠져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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