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아름답다.

[벌집과 꿀], 폴 윤

_수록된 일곱 편의 단편 중 세 편을 두어 번 반복해 읽었다. <보선>, <벌집과 꿀>, <크로머>. 그만큼 좋았고 미묘했다는 뜻이다. 문장들 속에서 나는 자주 멈췄다. 어떤 땐 숨마저 참고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읽을수록 밑줄은 늘어났고, 그것을 보면서 마음이 두근거리는 내가 조금 마음에 들었다.

_<보선>

이야기의 마지막 마침표 옆에 나는 이렇게 끄적였다. 그리하여, 아름답다. 여기서 방점을 찍어야 한다면 '아름답다'가 아니라 '그리하여'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를 이루는 날들과 사람들과 우연들과 그리고 곁들. 인간의 외로움과 곁을 이런 이야기로도 풀어낼 수 있구나. 이토록 섬세하고 뭉근하고, 그리하여 아름답게.

<벌집과 꿀>

어떻게든 "길을 만들어내고 있는"(p.205) 인간에 대하여. 그리하여 끝내는 아름다울 삶에 대하여.

"그래요, 우리는 비명을 지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잠을 못 자고요. 그럼에도 내일이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p.199)

"그는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부탁이니 우리를 그냥 놔둬줘요. 우리는 아무도 원치 않고 관심도 없는 땅에서 살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당신이 와서 이 땅을 다시 차지하려 들기 전까지는 모든 게 괜찮았다고요." 저는 그 말을 믿기가 힘들었습니다. 모든 게 괜찮았다는 말입니다."(p.198)

<크로머>

이방인의 삶. 나로서는 알 길이 없어 미루어 짐작만 해볼 수 있는 어떤 것. 사실 이 책에 수록된 소설들은 이방인의 삶을 이야기한다. 특히 쉽게 접할 수 없는 탈북민이나 고려인의 삶에 대해. 역사적 상흔은 엷은 배경으로 물러나 있고, 그 대신 하루하루가 있다. 만약 당시의 그들과 가까운 이웃이었다면 엿볼 수 있었을 법한 잔잔한 일상이. 나로서는 감히 헤아려볼 수만 있을 뿐인, 이방인의 하루하루가.

_나는 자존감이 낮다. 아주 낮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생각할 때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소설을 사랑한다는 거다.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 내가 가진 정체성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고 다행인 정체성이다. 감히 쓸 수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아니, 그래서 사랑합니다,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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