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과 독서(필사) 노트
오 년 전 시작한 나의 첫 필사책은 소설이 아니었다.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였다. 당시 갑작스럽게 발병한 아이의 극희귀난치병은 나를 절망의 나락으로 내동댕이쳤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은 내 눈에 이 제목이 들어왔다. 나이 지긋한 시인의 삶에서 우러나온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그 책은 제목처럼 “인생에 힘이 되어줄 한마디”를 가득 담고 있었다. 한 글자씩 가슴에 아로새기는 심정으로 책을 읽었다. 완독 후에 어쩐지 내 손으로 직접 옮겨 쓰며 다시 제대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만년필 한 자루와 노트를 준비했다. 책과 노트를 펼치고 만년필로 한 글자씩 옮겨 적었던 그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필사하는 동안 나를 둘러싼 것은 오직 사각사각 소리뿐이었던 그 충만한 시간의 질감. 노트에 옮겨진 활자들은 고스란히 내 속으로 들어와 야무지게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필사하기를 일 년 육 개월. 오백 페이지 가까이 되는 그 책을 전부 옮겨 적고 난 후 나는 확신했다. 필사에는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그때부터 소설을 읽으며 와닿는 문장에 플래그를 붙이고 그것을 노트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발췌한 글귀를 필사하고 마지막에 감상평을 짤막히 덧붙였다. 나만의 독서노트다. 읽은 책은 반드시 독서노트와 리뷰를 작성했고 지금까지 여덟 권의 노트가 쌓여 있다. 어떻게 보면 오직 나만의 것으로 재탄생한 책이기도 한 셈이다.
- 소설과 ‘하루 한 문장’ 노트
유독 마음을 울렁거리게 한 글귀를 독서노트에 옮겨 적던 어느날, 문득 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이 아름다운 문장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내가 그랬듯 다른 누군가도 이 문장에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독서노트에 발췌필사한 글 중 나름대로 고심해 선택한 글귀를 다른 노트에 짤막하게 옮긴 후 사진을 찍어 내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다.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한 문장씩 게시하면서 ‘하루 한 문장’이라는 태그를 붙였다. 그렇게 2019년 3월 27일부터 오늘까지,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사명감 아닌 사명감(?)을 가지고 매일 아침 한 문장씩을 공유하고 있다. 읽은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댓글을 남길 때면 어쩐지 내가 좋은(?)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또다른 나만의 노트, ‘하루 한 문장’ 노트가 탄생(?)한 배경이다.
필사하는 행위 자체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이를 온몸으로 통과하며 깨달은 나는 필사를 하고, 그 글귀를 마음에 새기고, 수없이 되뇌인다. 이를 통해 시련 속에서도 견디고 버티는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