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thing is Possible

[무엇이든 가능하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그가 눈을 떴고, 그래, 바로 거기 있었다. 온전한 깨달음이. 누구에게나 무엇이든 가능하다."(p.347)


이 짧은 문장에 반해서 그리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작품이기에, 고민 없이 선택한 책이다. (아직 작가의 책을 읽지 않은) 어떤 이는 이 문장을 보고 이렇게 짐작할지도 모르겠다. '자기계발서에 주로 나오는 - 간절히 원하면, 꾸준히 노력하면, 생각을 바꾸면 삶이 달라진다는 식의 - 긍정적 사고를 유도하는 내용인가?' 라고. 혹시 그랬다면 유감스럽게도(?) 그 생각은 1/10 정도만 맞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쭙잖은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지만 나는 이 책을 단 두 개의 문장으로 표현하고 싶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누가 알겠는가?' 라고.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우리나라에는 2019년에 출간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로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작가의 전작인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의 후속작으로 볼 수 있는 이 소설은, 루시의 고향이 주배경이며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전작에서 루시와 어머니의 대화에 언급되었던 사람들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루시와 어머니의 기억이나 마을의 풍문에 의해 각색(왜곡)되어버린 삶의 주인공이었던 인물들의 진짜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준다. 그러면서 루시 혹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래도, (루시) 당신에게만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까?

그 사람에게 그런 속사정이 있었는지, 일이 그렇게 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라고.


9편의 이야기 속 인물들은 제각기 자신만의 고통과 '수치심'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들이 숨겨온 아픔은 일찌감치 고향을 떠난 루시는 말할 것도 없고 가까운 이웃은 물론 가족조차도 알지 못한다. 사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누구에게도 말못할 수치스러운 아픔 한 두개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무엇보다도! 마냥 평탄하게 사는 듯 보여 내심 시기했던 사람에게 (내겐 없는) 아픔이 있다는 걸 알고나서 안도감 섞인 우월감을 느끼는 동시에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던 경험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작가는 인간의 본성임이 분명한 이 미묘한 심리, 즉 타인을 통해 느끼는 우월감과 연민이라는 아이러니한 감정을 기가 막히도록 예리하게 포착하여 그려낸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소설을 읽을 땐 극적 상황이 아닌데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마치 파종을 하듯 인물의 미세한 표정변화 또는 행동 하나 하나에 인간 본성의 씨앗을 심어놓아 어느 장면에서 그 싹을 틔울지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아래와 같이 작가의 메시지가 직접 드러난 부분도 있다.


"회고록에서 루시는, 사람들은 늘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게 느낄 방법을 찾는다고 썼는데, 패티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했다.(...)루시 바턴에게는 자신만의 수치심이 있었다. 오 세상에, 그녀는 정말로 자신만의 수치심을 가지고 있었다."(p.79)


어쩌면 보통의 평범한 인간이란, 순수하고도 저속한 이 '우월감'으로 자신만의 '수치심'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라는 인간부터도 (전부는 아니지만) 이런 이유로 삶의 어두운 이면을 다루는 책을 찾아 읽으니 말이다. 자신에게 닥친 큰 불행을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없이 가라앉을 때 이 치졸한 '우월감'이 건네는 위로라도 붙잡고 다시 일어서려 애쓴 사람이 나만은 아니기를.


정말 '무엇이든 가능한' 것이 삶이고 세상인 것 같다. 픽션보다 더 픽션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로 전세계가 이 난리인 것도 그렇고, 굳이 입양해 간 아기를 잔인하게 폭행해 죽음에 이르게 한 사악한 인간들이 버젓이 산다는 것도 그렇고. 물론 기적 같은 행운도 있다고는 하지만 비관주의자 기질이 다분한 나로서는 자꾸 그 반대쪽만 살피게 되니 이것도 문제라면 문제겠다;


여하튼, 나이가 들면서 받아들이고 내려놓아야 그나마 밝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반복해서 깨닫는 중이다. 순탄히 받아들이고 내려놓기 위해서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무엇이든 가능하다'가 아닐까.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이 무섭도록 당연한 진실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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