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사랑 이야기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김병운

'좁아터진 집에서만 연인'인 이들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우리 모두가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하는, 우리 사회에 엄존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


​​​이 작품은 성소수자의 사랑을 다룬 퀴어문학이다. 지금까지 여러 편의 국내 퀴어소설을 읽어봤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작품이 가장 좋았다. 입체적인 인물들과 잘 읽히면서도 뻔하지 않은 이야기 전개, 그리고 깊은 울림을 주는 메시지 등..자세히 들여다 보면, 성소수자와는 별개로, 인간 본연의 복잡미묘하고 모순적인 행태를 매우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배우 공상표. 유명 영화감독의 작품에 남자 주인공으로 발탁되어 데뷔와 동시에 톱스타가 된 그는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한다. 이렇게 화려한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필모그래피가 있는데, 바로 몇 편의 퀴어 단편영화이다. 사실 그는 이 영화의 감독이자 대학 선배인 김영우와 연인 사이로, 그들은 김영우의 낡고 좁아터진 집에서만 열렬히 사랑할 수 있는, 게이 커플이다.


자신의 남다른 성적 취향을 깨달은 열두 살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지난하게 계속된, 자기 부정과 당당하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오랜 속앓이를 해온, 그럼에도 여전히 성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공상표. 그리고 일찌감치 자신의 성정체성을 받아들인 김영우. 이런 그들에게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갖가지 갈등들.

또한 사회적으로 인정 받으며 기세등등하게 잘나가는 배우 공상표와 제대로 된 작품 하나 내놓지 못한 채 영화판 바닥을 전전하는 영화감독 김영우. 이들의 사회 경제적인 격차에서 생기는 인간적인 치졸함과 시기심.


"(...) 저는 그때까지도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게이인 나를 비관하고 혐오하고 있었으니까요."


"강은성(공상표의 본명)에게 (...) 혀를 차고 그건 어딘가 잘못된 거라고 손가락질하고 나면 나는 상대적으로 별 문제가 없는 사람인 것만 같았으니까."


작가는 성소수자 개인의 내적 고민과 갈등, 이 사회에서 성소수자로서 살아가며 감내해야 할 소외감과 고통, 나아가 모순 투성이인 인간의 본성과 이면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또한 공상표의 가족에게도 관심을 갖을 필요가 있다. 특히 그의 엄마는 홀로 남매를 키워 아들에 대한 '과도한 애정과 집착을 동력 삼아 사는' 인물로, 자신이 애지중지 톱스타로 만들어 낸 아들이 성소수자인 것을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 그의 누나 역시 마찬가지다.


"(...) 만약 커밍아웃을 한 게 친구나 동료였다면 그녀는 기꺼이 응원했을 것이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하면서 안아 줬을 것이고 얼마나 외로웠니, 하면서 울어 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건 그들이 엄연한 남이기 때문이다. (...) 피가 섞인 내 가족의 일이라면, 하나뿐인 내 동생의 일이라면 얘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 동생이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도, 소수자나 약자로 분류되는 것도 싫었다."


성소수자인 당사자가 감내해야 할 아픔은 물론이고 그들의 가족이 받아야 할 당혹감과 고통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그려내어,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편협하고 냉담한 시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한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이태원 클럽 방화 화재사건이라는 소설속 장치를 통해, 성소수자 개인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모여 만든 커뮤니티마저도 정당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집단적 수치심을 실감나게 그려낸 점이다. 소외된 이들이 모인 집단의 자발적이고 강요된 수치심 - 결국 우리가 문제이니 우리만 조용히 있으면 된다는 - 마땅하고 정당한 요구도 할 수 없게 하는 무력한 수치심이 존재할 수 있다는 현실을 곱씹을수록 씁쓸함이 남았다.


예전에 접했던 다른 퀴어문학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그 여운과 울림이 전에 없이 더욱 깊게 다가와서 한동안 마음이 묵직했다.


조금은 독특한 방식이지만 결국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분명하게 각인시키는 작가의 저력이 놀라웠다. 그리고 성소수자를 비롯한 그들을 둘러싼 세계를 다양한 각도에서 섬세하게 그려내면서도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시종 담백하고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