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한 말이다. 다소 과격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이 말에 절대 동의하지 못하겠다고 선뜻 나설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가족이란 소중하고 사랑하는 존재임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고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인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누구나 적어도 한 번쯤은, 가족이고 뭐고 모든 관계를 떨쳐버리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갈망을 품고 살아가지 않는가!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은 (우리나라에는) 2017년에 출간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장편소설로, 가족과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달아나고자 안간힘을 쓰며 살아간 한 여성, '루시 바턴'의 이야기다.
지독히도 가난하고 불우했던 어린 시절, 루시와 그 가족은 학교나 마을에서 놀림과 따돌림의 대상이었고, 루시의 부모나 형제는 누가 보아도 비정상적인 가족이었다. 그녀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으로 끔찍한 과거와 가족으로부터 멀리 달아나 가족과 연락을 거의 하지 않은 채, 뉴욕에서 결혼을 하고 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중 9주간 입원 치료를 해야 하는 일이 생긴 그녀는 오랜만에 찾아온 엄마의 병간호를 받게 된다, 닷새 동안. 그 5일 동안 그녀는 엄마와 함께 어린 시절 기억을 나누고 회상한다. 시간이 흘러 그녀가 그 기억을 회고록 형식으로 남긴 것이 바로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라는 책이고, 이 책은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다.
"바턴 집안의 식구들, 우리 다섯 명 - 줄곧 그랬듯 정상적이지 않은 - 이 하나의 구조물로 내 머리 위에 떠 있고, 심지어 다 끝날 때까지 나는 그것이 거기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그런 느낌이었다.(...) 우리 다섯 식구가 정말로 건강하지 않은 가족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우리의 뿌리가 서로의 가슴을 얼마나 끈질기게 칭칭 감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p.194)
이 문장은 '가족'이라는 존재와 그 관계가 가진 본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다.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가족과 과거였지만 자신이 그것에 '끈질기게 칭칭 감겨' 끝내 풀려나오지 못할 것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음을, 그녀는 가슴 사무치도록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내 것이다. 이 이야기만큼은. 그리고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다."(p.216)
"나는 우리가 아이였을 때 품게 되는 아픔에 대해, 그 아픔이 우리를 평생 따라다니며 너무 커서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그런 갈망을 남겨놓는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꼭 끌어안는다. 펄떡거리는 심장이 한 번씩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끌어안는다.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p. 217)
"모든 생은 내게 감동을 준다."(p.219)
어쩌면 위에서 인용한 네 개의 문장만으로도 이 책을 설명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이 이야기는 내 것이다. 그리고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다. (그럼에도) 모든 생은 내게 감동을 준다."
너무도 당연한 나머지 살아가면서 누구나 가끔씩 부정하고도 싶은, 지독히도 끈질긴 이 진실이 새삼 두렵게도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