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서야 온전히 내려 놓을 수 있는

[선릉 산책], 정용준

흔히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혼잣말이나 거친 욕설을 하거나 불안정한 눈빛으로 같은 행동을 강박적으로 반복하기도 한다. 신체적으로 드러난 장애는 없으나 우리가 보기에 그들은 어딘가 평범하지 않고 이상하다. 그렇게 판단함과 동시에 우리가 그들을 대하는 방식은 대개 비슷하다. 재빨리 곁눈질로 그를 훑어본 다음 바로 시선을 거둔 후 애써 못본 척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뾰족한" 시선을 받는 사람들을 우리가 흔히 볼 수 없는 이유는 보통의 건강한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수가 적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들 대부분이 숨어 지내기 때문이다. 집이나 치료 센터 등에서. 관심과 보호가 필요한 이들은 홀로 생활할 수 없으므로 보호자의 돌봄 아래 숨어 지낸다. 그리고 그 보호자는 대부분 가족이기 마련이다.

소설가 정용준의 세번째 소설집, [선릉 산책]은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록된 일곱 편 모두 그런 것은 아니나 표제작을 비롯한 세 편의 소설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게 다루고 있으니, 이들의 삶과 상처를 담고 있는 책이라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고 건방지게 멋대로 생각해본다. 이와 별도로 인상적인 작품인 <미스터 심플>은 이미 리뷰를 남겼기에, 여기서는 <선릉 산책>, <두번째 삶>, <이코>에 대한 리뷰를 하고자 한다.

<선릉 산책>
자해 성향이 있는 자폐 청년(한두운)을 반나절 동안 돌보고 시간당 만원을 받는 일일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주인공. 한여름에 헤드 기어를 쓰고 남다른 행동을 하는 두운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한적한 선릉 공원으로 간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나 길을 걸을 때에도 진땀을 빼야 하는 상황에 그는 진이 빠진다. 오전 아홉시부터 저녁 여섯시까지, 시간은 한없이 더디 흐르고 그는 두운과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


"누군가 이 장면에 의도적으로 슬로모션을 건 것처럼 표정과 눈빛, 수군거리는 소리까지 명징하게 감각됐다. 그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헤드기어를 쓴 남자의 얼굴을 쳐다봤다. 한두운은 경계선 위에 떠 있는 얇은 막처럼 그 사이에서 희미하게 진동했다.(...)한두운의 몸이, 꼿꼿이 서 있던 느낌표 같던 몸이, 물음표처럼 구부러졌다."(p.78)

"한두운은 평생 나 같은 사람들을 몇 명이나 만났을까. 그의 토요일과 일요일이 궁금하다. 집에서의 모습과 방의 풍경. 그런 것들을 상상해봤는데 어째서인지 금세 마음이 안 좋아졌다."(p.81)

"이렇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이런 내 입장을 생각해본 적 있어요? (...)나는 다 알 것 같았다. 그녀가 얼마나 힘든지, 왜 이렇게 화가 많이 났는지도 알 것 같았다.(...)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말했다."(p.105)

<두번째 삶>
과실치사죄로 십년 형을 살고 막 출소한 주인공. 고등학교 때 그는 친구들과 정신 지체 친구를 폭행해 옥상에서 떨어져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러나 사실 주인공 역시 가스라이팅 피해자이다. 비뚤어진 가치관을 지닌 다른 친구로부터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은 선량한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악마이므로 괴롭혀도 된다'는 식의 세뇌를 지속적으로 당해왔다.


"왜? 불편해? 저런 사람이 있어. 불행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저렇게 태어난 자들이.(...)가만히 있는데도 기분이 나빠지고 선량한 사람을 나쁘게 만드는 존재. 마녀들. 악마들.(...)그들은 항상 괴롭힘을 당해왔어."(p.132)

<이코>
잠자코 생활하다가 별안간 괴성이나 욕설을 내지르면서 이상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극심한 증상이 잠시 지속되다 멈추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잠잠해진다. 뚜렛 증후군 환자들이다. 뚜렛 증후군을 앓는 '주우'의 학창 시절 별명은 '이코이코'다. 같은 반 친구들은 그가 '사이코'라며 그렇게 불렀다. 그의 학창 시절이 어떠했는지는 굳이 적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명, '미이'는 그의 편에 서서 보호해주었다. 덕분에 '주우'는 고통스러운 삶을 견딜 수 있었는데 어느날 불현듯 '미이'가 떠나버린다.

"그들은 곁눈으로 흘낏 남자를 쳐다보곤 빠르게 고개를 돌린다. 의심쩍다. 불편하다. 불쾌하잖아. 위험해. 기분 나빠. 더러워. 무심해 보이는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사방의 뾰족한 시선이 목과 팔과 다리를 찔러올 때, 남자는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나는 나무다. 나는 돌멩이다. 나는 상처받지 않는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분노를 느낄 줄 모른다."(p.152)

"두렵거나 떨릴 때, 친구들이 괴롭혀 지치고 힘들 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그 험하고 나쁜 말을 스스로 들었을 때, 한마디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궁지에 몰리는 끔찍한 기분이 들 때, 주우는 벽에 이마를 찧었다."(p.163)

"어디가 마비되지도 않고, 다리를 절지도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비애를 우리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평생 그들을 돌보아야 하는 고통을 우리는 백분의 일도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서로가 죽고 나서야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을 삶의 무게와 고통.

작가는 덤덤히 보여줄 뿐이다. 숨어 지내기에 우리가 자주 볼 수 없는 그들의 아픔과 상처의 일면을. 그리고 그들이 받아야 할 사람들의 냉랭한 시선과 위선 섞인 값싼 동정을. 그저 덤덤히 보여줄 뿐인데, 돌덩이 하나가 비집고 들어온 듯 마음이 무겁다. 부질없지만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불공평하고 비정한 운명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사십 년을 살아오며 몸과 마음으로 체득햐 내 편견과 고정관념, 위선도 생각해보았다.

아무것도 모르겠고 두렵다. 새삼 공허하고 씁쓸해서, 어쩐지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