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일에 관한 한 완전히 '개인적인' 건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란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 곳이어서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 같아도 실은 어디에선가,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시대의 누군가는 분명 같은 체험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특히 '개인적인 체험'이 책에 쓰여지면 더이상 개인적인 것에 머물 수 없게 된다. 그 책을 읽은 독자 중 일부는 자신의 체험이 개인적이지 않음을 깨닫는다. 흔치 않은 불행한 '개인적인 체험'을 겪은 이들은 더욱 그렇다. 아무리 둘러봐도 같은 처지의 사람을 찾을 수 없는 현실에서 그들은 강한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낀다. '너도 그렇니? 나도 그래, 어쩜 사는 게 다들 똑같니'라는 삶의 일반적인 고됨을 토로하며 느끼는 흔해 빠진 위안조차 얻을 수 없다. 보기 드문 시련 속에서 외로움과 수치심에 시달리는 그들이 찾는 것은 결국 책이다. '읽기'를 통해 현실에서는 얻기 힘든 위로를 구할 수밖에 없다.
오에 겐자부로의 장남은 뇌 장애를 지니고 태어났다. 지적 장애를 비롯한 온갖 장애를 지닌 아들과의 공생은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병원에서 어떤 결정적인 이야기를 들은 어느 날 그는 침대에 쓰러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처럼 온몸으로 절망한 자신을 발견한 일은 두 번 다시 없었다"는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개인적인 체험]이 명백히 고뇌에 찬 경험에 뿌리를 둔 작품이니만큼 나는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마도 이 청춘소설을 썼다는 사실이 근본적인 정화 작용을 나에게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그 정화 작용의 힘은 이미 이 소설을 쓰고 있던 초여름의 어느 날에 절망하여 침대에 널브러져 있던 아직 젊은 내게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작가의 말' 일부, p.279)
보기 드문 불행한 "개인적인 체험"을 겪은 작가는 소설 '쓰기'를 통해 "정화 작용", 즉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자신과 분리하여 주인공을 설정했다고 하지만 소설 전반에 그의 처절한 고뇌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철학자 벤야민은 "인간은 자기가 어떻게 절망에 도달하였는지를 알면 그 절망 속에서 살 수 있다"고 했던가. 아마도 작가는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주인공에게 투영시켜 그가 내딛은 번뇌의 행로를 집요하리만큼 추적해 예리하게 파고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절망의 밑바닥에 이르고 나서야 마침내 자신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었으리라.
그래서 '읽고 쓰는 행위'에는 "자기 정화" 또는 '자기 치유'의 힘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27세의 학원 강사 '버드'. 결혼 3년 차인 그는 아프리카 모험을 꿈꾸며 늘 현실에서 도피할 생각만 한다. 그런 그에게 머리 이상을 지닌 채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아들이 태어난다. 이 아이의 존재가 자신의 평생을 옥죌 것을 직감한 그는 의사가 권유하는 수술을 거부하고 아들이 쇠약사하기를 기다린다. 이를 간절히 바란 나머지 그의 신경은 온통 아이의 사망 여부에 곤두서있다. 하지만 인간인 동시에 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실로 엄청난 번뇌에 시달린다. 그것은 주로 수치심과 자기혐오의 형태로 발현되다가 급기야 폭음, 성행위 집착과 같은 자학적인 퇴폐 행동으로 치닫는다.
나는 이 소설에 몹시도 몰입했다. 아픈 아이를 둔 주인공의 처지가 나와 비슷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절망적인 운명 앞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민낯을 너무도 섬세하게 그려낸, 그 미세한 감정의 결을 내 것인 양 아파하며 읽었다.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아들의 쇠약사를 바라는 그의 심사가 비인간적이고 부도덕한 것은 분명하다. 내가 괴로웠던 것은 부모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그를 비난하는 한편으로 그의 비정함을 강렬하게 이해하는 나를 직면했던 모든 순간이었다. 아픈 자식은 죽음의 자리에서조차 내려 놓지 못할 천추의 한이 될 것임을 알기에 그의 처절한 현실 도피 행각을 가슴 아프게 공감했다. 언젠가 나 역시 품었던 수치스러운 감정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단어와 문장 앞에서는 슬픔과 더불어 묘한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아픔은 아픔을 알아보고 슬픔은 슬픔을 향하기 마련이다. 내가 큰 불행을 겪으며 상처 받은 이들에게 눈길을 돌렸듯, 작가 또한 장애를 짊어진 아들과 공생하며 고통 받는 자들("부서지는 인간")에게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이어 갔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그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줄곧 이야기를 이끌어 왔던 주인공의 치열한 내적 갈등과는 동떨어진 결말이 다소 느닷없긴 했지만, 나는 그조차도 이해가 됐다. 그런 딱한 처지의 부모라면 가능하다. 자식을 위해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것이 부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