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이라는 이름으로

[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

불씨가 당겨진 심지가 맹렬한 속도로 타들어가고 있다. 이미 점화되었으므로 되돌아갈 이유 따윈 없다. 거침없이 타들어간 그것은 마침내 목표물을 모조리 불태워버린다. 마지막 페이지의 검은 활자들은 온통 흩날린 잿가루 같다. 그런데 아직 희미한 불씨가 남아 있다. 허기를 다 채우지 못했는지 그것은 새로운 먹잇감을 찾는 듯 입맛을 다신다.


어떤 책은 선명한 이미지로 남는다. 대개는 시각적 이미지로, 한동안 환영(幻影)처럼 아른거린다. 이번엔 걷잡을 수 없이 타들어가고 있는 심지였다. 마치 구간반복 재생된 영상처럼 어떤 페이지를 다시 펼쳐도 생생한 불씨가 보였다. 불길에 휩싸인 듯한 표지가 인상적인 이 책의 원제는 "A burning"이다.

소설은 기차 테러 사건으로 시작한다. 인도 빈민가에서 발생한 이 사건으로 백 명 이상의 승객이 사망하고 테러리스트는 종적을 감춘다. 범인을 잡지 못한 무능한 경찰과 정부에 대한 대중의 비난이 거세지던 어느 시기, 이 지역에 사는 이십 대 무슬림 여성 '지반'은 페이스북에 정부를 비난하는 글을 올린다.

"경찰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돕지 않는다면, 죽는 모습을 그냥 지켜만 본다면, 정부 역시 테러리스트라는 뜻 아닌가요?"


사건을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의 감시망에 걸려든 이 짤막한 글은 시의적절한 먹잇감이었다. 인구의 대부분이 힌두교를 신봉하는 인도에서 무슬림, 게다가 가난하고 못 배운 여성이란 거센 여론을 잠재우는데 요긴하게 쓰일 희생양으로 충분했다. 경찰은 '지반'을 체포해 법정에 세운다. 테러리스트들의 방화를 방조한 혐의다. 검사는 사건 당일 꾸러미를 들고 기차역으로 가는 '지반'을 보았다는 목격자가 있다고 몰아세우며 그녀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반정부 행위로 단정했다. 언론은 앞다투어 이를 보도한다. "이 무슬림 여성은 테러리스트를 도운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이 여성은 국가에 대한 매우 심각한 범죄 혐의와 더불어 선동 혐의로 조사를 받았습니다-. 이 여성은 테러리스트 분파 모집자와 페이스북에서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녀는 왜 조국에 대해 그토록 엄청난 증오를 가슴에 품게 되었을까요?-" 멋잇감을 찾던 성난 불씨가 옮겨 붙을 심지를 찾아낸 것이다. 일단 당겨진 그것은 거침없이 타들어간다.


먼 나라 인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임에도 강한 기시감이 들었던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종종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네티즌에 의한 군중심리, 언론에 의한 여론몰이, 마녀사냥 등 하루 아침에 누군가를 죄인으로 만들어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일은 늘 있었다. 군중 속에서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개인은 무명성, 무책임성에 힘입어 온갖 상상과 억측으로 격앙된다. 그렇게 광포해진 군중은 공통의 목표물을 공격하고 부패한 정권은 이를 민심이라는 이름으로 악용한다. 물론 촛불의 힘으로 부패 정권을 몰아낸 것 또한 대중이지만, 세상 만물이 그렇듯 대중 또한 모순적 이중성을 지닌 것이다.

한편 '지반'외에 두 명의 인물이 더 있다. 여성 정체성을 가진 가난한 트렌스젠더 '러블리'와 '지반'이 다녔던 여학교의 '체육 교사'. 유명 배우가 꿈인 '러블리'는 '지반'으로부터 영어를 배웠고, 야망이 있는 중산층 '체육 교사'는 운동에 소질이 있던 '지반'을 각별히 대했다. 세상 모두가 자신에게 등돌린 상황에서 '지반'은 이들에게 마지막 희망을 건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대중에 의해 유명세와 권력을 거머쥐게 된 이들은 '지반'을 돕고자 했던 초심을 잃고 광포한 여론에 동화되고 만다. 이들 또한 욕망의 심지에 불씨가 당겨진 것이다. 대중의 적이 되어버린 '지반'은 대중에 지지 기반을 둔 그들의 욕망을 가로막는 방해물일 뿐이다.

"세 사람"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 소설은 중요한 등장인물이 있다. 바로 대중이다. 전면에 드러나진 않았지만 개인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바꾸어 놓을 수 있는 대중은 양날의 칼과 같다. 언제 어디서 어느 쪽 칼날을 휘두를지 모르는. 더 무서운 것은 우리가 그 날선 칼날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소설은 세 사람의 이야기가 교대로 진행되는데, 의도적으로 '지반'의 시선에서 서술된 부분만 쭉 발췌필사를 해보았다. 태어나면서부터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을 살다 간 '지반'의 운명이 비참해 한동안 먹먹했다. 동시에 무척이나 씁쓸했는데 '지반'을 배반한 '러블리'와 '체육 교사'를 마냥 힐난하지 못하는 나의 속물스러움(?) 때문이었다. 그들 또한 그럴 수밖에 없음을 공감하는 나를 인정하는 건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다.


언제 세상의 이면을 이토록 잘 알아버린 씁쓸한 나이가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