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와 이저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_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에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우리의 삶은 분명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 자체로 감동을 준다'는 역설적인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담고 있다. 둘째, 그녀의 작품에서는 강렬한 서사를 기대하면 안된다는 것. 그녀는 일견 멈춰있는 듯한 평범한 일상을 치밀하게 관찰하여 삶과 인간 내면의 촘촘한 결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렇다고 지루할 거라 짐작한다면 오산! 오히려 인물의 사소한 표정이나 행동에도 어떤 의미가 있는 건 아닌지 살피며 읽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는 1998년에 출간되고 국내에서는 이듬해 [타인의 여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데뷔작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작가의 한 작품이 마음에 들면 그의 모든 작품을 찾아 읽는 편인데, 국외 작가의 작품을 이렇게 읽은 건 그녀가 처음이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강력한 한방(?)이 없는 그녀의 소설은 대신 아주 사소한 부분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붙잡는 묘한 매력이 있어서 자꾸만 찾게 된다.
_"에이미는 자신이 엄마와 검은 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선은 고작 연필로 그은 정도의 굵기였지만 늘 거기 존재했다. 이를테면 둘 중 하나가 사무실을 나서서 화장실이나 현관 식수대에 가더라도 검은 선은 끄떡없었다. 그 선은 벽을 뚫고 그들을 연결했다."(p.16)
"그녀와 엄마는 바보 같은 자신들의 삶이 고단하고 구역질 났지만 서로 찰싹 들러붙어 있었다."(p.313)
미혼모로서 온갖 고생을 하며 딸 에이미를 키운 이저벨. 이들은 대개의 모녀 사이가 그렇듯 '이들을 연결하는 검은 선'이 느슨해지기도 팽팽해지도 하는, 즉 사랑과 증오가 공존하는 고단하고 따분한 일상을 함께 한다. 에이미가 열여섯 살이던 어느 해 무더운 여름, 이들에게 불같은 위기가 찾아오고 소설은 이 모녀가 아슬아슬하게 보내는 위태로운 한 계절을 그려낸다.
"그녀는 상처를 입었다. 이 모든 것을 떠올리면서 상처를 입었고, 설령 그날 오후에 있었던 일이 낱낱이 기억나지 않는다 해도, 잘 알지도 못하는 딸과 여태 살아왔다는 거북한 깨달음이 점점 커져갔다는 사실만큼은 또렷이 기억했다."(p.292)
내 속에서 생겨나 자라났으며 세상에 나온 뒤에도 늘 내 손바닥 안에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딸이 '잘 알지도 못하는 딸'이 되어버렸음을 느끼는 엄마의 심정이란..나 역시 머지않아 절절히 체득하게 될 감정이 분명하기에 이저벨에게 과몰입해 읽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너무 가까워서 '팔딱 팔딱 뛰는 자신의 감정'에만 빠져 서로를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는 모녀 사이를 날것 그대로 잘 그려내어 틈틈히 마음을 진정해야 했다. 특히 '검은 선'이 곧이라도 끊어질듯 팽팽한 시기에 모녀를 맴도는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를 묘사한 장면들에서는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무척이나 생생했는데, 역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이기에 가능한 그녀만의 탁월한 표현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또 한번의 계절이 지나가고 또한번의 여름이 사라질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었다."(p.532)
웅덩이에 고인 썩은 물처럼 꼼짝 않을 것 같던 무더위의 기세가 꺾이고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그들을 휘감았던 불같은 감정도 서서히 가라앉고 모녀는 결국 받아들이게 된다. 서로의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를. 나아가 그들은 서로를 통해 성장한다. 첫사랑의 열병을 호되게 앓은 에이미는 진정한 사랑을 아는 숙녀로, 오만하고 폐쇄적이었던 이저벨은 자신의 진정성을 되찾고 닫힌 마음을 여는 엄마이자 여자로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이 '성장'은 완벽하거나 완성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영원히.
_이 뻔한 메시지를 작가는 뻔하지 않게 그려낸다.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표현하면서도 섬세한 아름다움이 있다.
이 책을 덮고 책장에서 [다시, 올리브]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평생 친한 친구라고는 없었던 두 여인, 직설적이고 무뚝뚝한 올리브와 오만하고 폐쇄적인 이저벨은 80을 넘긴 나이에 요양원에서 만나 친구가 된다. 작가는 데뷔 후 20여년이 지나 발표한 [다시, 올리브]에 이저벨을 재등장시켜 올리브와 친구의 연을 맺게 함으로써 이 복잡 미묘한 삶은 결국 따뜻한 감동을 주는 것이라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