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없이 촘촘한

[밀회], 윌리엄 트레버

_<고딕성당>이라는 그림책이 있다. 13세기 고딕성당이 지어지는 과정을 세세한 일러스트와 함께 보여주는 책이다. 땅을 파고 기단을 다지고 벽과 지붕을 세우고. 성당 건축의 전과정이 펜화로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 치밀한 펜선에 압도되곤 한다. 처음 만난 이 아일랜드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어쩐지 이 그림책이 떠올랐다. 인물의 감정이 잉태되고 심리적으로 미세하게 변화하는 과정을 그림으로 나타낸다면 아마도 이렇게 빈틈없이 빼곡한 펜선이 아닐까, 생각했다.


강렬한 서사나 극적인 반전은 없다. 대신 사람과 사람의 감정, 사람 사이의 기류가 한 권의 책을 촘촘히 채우고 있다. 치밀한 묘사로 보여주나 그리 친절하지는 않다. 넌지시 알리기 때문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기민하고 섬세한 흐름을 놓치기 일쑤다. 미욱한 나는 종종 멈칫하고 앞 페이지를 넘겨보고 전후 문장도 다시 살폈다. 왜 이 단어와 문장을 썼을까, 무슨 의미일까, 긴가민가했다. 찝찝한 의문을 품은 채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다시 몇 개의 장소(?)로 돌아왔다. 곱씹으며 옮겨 적는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외마디가 뛰쳐 나왔다. 아아 이거였구나, 어쩜 세상에 그런 거였어! 물론 오독(誤讀)의 가능성도 없진 않으나 이럴 땐 직감을 믿어야 한다.


_그래서 결론은 좋았다, 는 말을 하고 싶었다. 때로는 '좋다'라는 단어 하나로 충분하다. 좋으니까 이유 따윈 중요하지 않고, 좋은 이유를 일일이 다 설명하기 어려우니까. 수록된 대부분의 작품이 좋았지만, 여기에서는 가장 좋았던 <고인 곁에 앉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에밀리는 이제 막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다. 다음날 장의사가 그의 집으로 올 예정이고 남편의 육신은 2층 침실 침대에 있다. 그런데 남편이 죽은 것을 모르고 성당 단체에서 두 명의 여인이 찾아 왔다. 그들은 병환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찾아가 위로하고 기도하는 일을 해왔다. 죽은 남편을 애도하는 그들의 위로에 에밀리의 마음은 심란해진다.


"여러분이 오신 집에는 슬픔이 없어요."(p.21)

"제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어요."(p.25)


생전에 남편은 늘 언성을 높이고 거친 말을 했다. 폭력은 쓴 적 없지만 에밀리는 남편이 차라리 폭력을 쓰기 바랐다. 말로 표현된 분노의 힘보다 그 편이 견디기 쉬울 것 같았다. 23여년의 결혼 생활 동안 에밀리는 늘 주눅 든 채 불안 속에 살았다. 에밀리는 처음 보는 방문객들에게 막 세상을 떠난 남편 험담을 하기 시작한다. 방문객집에 돌아오늘 길에 말한다. "위층에 고인이 있어서 자신들이 들은 내용이 더욱더 듣기 끔찍했다고."(p.27) 에밀리는 위층 방에 올라가 시트가 덮여진 남편 옆에 무릎 꿇고 앉아 기도를 올린다.


"에밀리는 기도를 올렸다.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오랫동안 자신을 모욕한 이 남자의 구원을 빌었다. 두려움이 에밀리가 말한 사랑을 고갈시켜 껍데기만 남았지만, 방문객 앞에서 그랬듯 에밀리는 사랑의 잔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슬퍼할 수 없었고, 애도할 수 없었다. 너무 적은 것만이 남았고, 너무 많은 것이 파괴되었다."(p.27)


"방치된 방 안에서 에밀리는 선의를 보인 여자들에게 자신이 한 말을 하나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했다 해도 상관없었다. 에밀리는 조금 더 앉아 있다가 커튼을 걷었고, 하루가 밀려 들었다. 그날 밤 불러낸 유령이 이곳에 있었다. 한때 그녀 자신의 모습으로."(p.28)


40년 넘게 부부로 살아온 친정부모님이 떠올랐다. 에밀리 부부와는 다른 상황이지만, 일흔 가까이 된 연세에도 매일 지치지도 않고 열렬히(?) 싸운다. 만약 아빠가 먼저 돌아가시게 된다면 엄마는 에밀리와 같은 심정이 아닐까. '너무 적은 것만이 남았고 너무 많은 것이 파괴되었지만, 사랑의 잔재를 부정할 수 없는' 그런 복잡미묘한.


이해력이 부족한 나는 마지막 짧은 문장을 몇번이고 되읽었다. "한때 그녀 자신의 모습"이라니? 알듯 말듯 곱씹던 중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윽고 숨막힐 듯 무거운 공기 속에 에밀리와 방문객들 옆에 소환되어 엉거주춤 앉은 투명한 영혼이 보인다. 이제서야 그것은 에밀리가 23년 간 속으로만 쌓아온 가혹한 힐난을 가만히 듣고 있다. 한때 에밀리가 자신 앞에서 그랬듯이.


_어쩜 이런 글을 이렇게 쓸 수 있을까. 결은 조금 다르지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작품 스타일과 비슷해 더 좋았다. 오랜만에 역주행 정독하고 싶은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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