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불편함과 마주하기

[차별 감정의 철학], 나카지마 요시미치

거두절미하고,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다. 혹시 '철학'이라고 해서 관념적이지 않을까 망설여진다면 전혀 걱정하지 마시기를. 오히려 적나라할만큼 현실적이고 인간적이어서 차라리 뜬구름 같은 이상 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 들 것이다.


"극악무도한 사람이 아닌, 모든 도덕관념을 송두리째 날려 버린 퇴폐주의자가 아닌, 오히려 죄책감이 강하고 소심하고 선량한 시민이기에 차별 감정으로의 경멸에 매달린다. 그들은 '좋은' 사람이 갖춰야 할 모든 요건을 갖추고 있기에 그 귀속사회에서는 그들의 차별 감정이 보색처럼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들은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자각이 전혀 없다. 이렇게 사회적 낙오자도 사회적 부적격자도 아닌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 같은) '선량한 시민'이 차별 감정을 생산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해결이 어렵다는 사실을 확실히 마음에 새겨야 한다."(p.92)

저자는 집요하게 우리의 내면을 파헤친다. 우리 안에 분명 존재하지만 너무도 미약해서 감지하기 어려운 사소한 악의까지도 하나 하나 건져내며 말한다. 우리가 타인을 위한 '배려'나 '교양'으로 배우고 익혀온 것들이 사실은 타인을 속이는 '차별 감정'과 '기만'이라는 가면에 불과하다고. 그 가면 속에 감춰진 우리의 민낯을 저 밑바닥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볼, 그 불편함을 감수할 준비가 되었다면 이 책을 펼쳐도 된다.

저자가 고백했듯 명확한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정답이 존재할 리 없는 문제다. 다만 우리 안에 아래와 같은 '교활함'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A는 도로 저편에서 신체장애를 가진 B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순간 난감한 감정이 몸(뇌리)을 꿰뚫는다. B가 가까워진다. A는 온몸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시작한다. B가 언제쯤 지나치게 될지 시간을 계산한다. (...)A는 B에게서 계속 시선을 외면한다. A가 일행과 함께 있는 경우에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대화를 이어간다. 동시에 A는 몸에 희미한 아픔을 느낀다. 하지만 그 아픔은 너무나도 작아서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는 사이 B가 완전히 지나갔다. A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아무 일도,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 전의 두려움은 괜한 기우였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그만둬야 한다. A는 서둘러 모든 것을 '잊어버리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잊어버린다. 아니, 정확하게 고쳐 말하자면 잊어버린 척을 한다. 잊어버렸다고 자신을 속인다.

A는 매일 끊임없이 이 기만적인 행위를 반복한다. A의 죄목은 무엇일까? B를 아프게 한 것이 아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을 유죄로 보지 않는,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희미한 죄의식이 마음 한구석을 괴롭히지만 애써 무죄라고 생각하는, 생각하려고 하는, 그 교활함이다.(...) 그저 '어쩔 수 없다'고 탄식하는 그 나태함이다.


B는 한순간에 자신의 존재가 상대 A에 의해 통째로 배경에서 잘려나와 일개 '장애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꼬리표가 달리고 세상에서 그 존재를 말살당한다.(...) 사르트르의 말을 빌리면 B는 A에 의해 '무화無化'되었다. B는 무의 상태로 A와 지나친다. 그리고 독특한 불편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A의 시선은 엉뚱한 곳을 보고 있지만 집요하리만치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A는 온몸으로 '나는 당신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당신을 무화했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B는 자신에게 어떤 시선이 향하기를 바라는 것일까? 자신을 배경과 따로 떼어놓지 않는 시선이다. 자신에게서 존재를 앗아가는(무화하는) 폭력이 없는 시선이다."(p.172~4)


당신 안의 기만과 교활함을 인정하는가?

이외에도 책은 우리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허울좋은 '선의'로 포장된, 사소하고 미약한 '악의들'을 기어코 찾아내 거리낌없이 묻는다. "이래도? 이래도 외면하고 부정할 겁니까?"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가면 속 나의 민낯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던 불편한 시간. 그렇지만 책 읽기 전후의 내 사고가 조금은 달라졌음을 느낀다.


당신도 이 책을 통해 그 불편함을 감수하기 바란다면 주제넘은 생각일까.


덧)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일부 사고방식에 반박하고 싶은 부분이 있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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