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머물면 더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 정혜신
by 디디의 노블 테라피 Mar 3. 2022
_왼쪽 손바닥에 점이 하나 있다. 꽤 오래전에 생긴 것으로 기억한다.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지냈는데 어느새 크기가 더 커져 있었다. 언뜻 보면 작은 하트 모양 같다.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아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손발바닥에 생긴 점은 악성흑색종일 수 있다는 글이 많았다. 동네 피부과에 갔는데 의뢰서를 써줄 테니 대학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해보라고 했다. 정확한 건 검사 결과를 봐야 알 수 있다고. 대학병원 예약까지 마치자 괜히 가슴이 철렁했다. 미리 조바심 낼 필요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방정맞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내게 안겨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를 보는 심정이 심란하기 그지 없었다.
악성흑색종이면 어떡하지. 손발바닥 흑색종은 예후가 좋지 않다고 하던데 딸아이는 어떡하지, 이제 막 새학년이 시작됐는데. 아픈 아이라 평생 내 돌봄이 필요한데 나까지 이러면 안되는데..아직 조직검사도 받지 않았는데 별별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치료법 없는 극희귀난치 유전질환을 앓는 아이와 지내며 하루에도 몇 번씩, 내게 탈출구는 죽음밖에 없는 걸까, 하고 체념 섞인 좌절을 겪곤 하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닥치니 막막하고 두려웠다.
우연이라면 우연이고, 다행이라면 다행인 걸까. 이 책을 읽고 며칠 지나지 않아 이런 일련의 일들이 벌어진 것은.
_"슬픔 자체보다 더 힘든 것이 슬픔을 슬퍼하지 못하는 거예요. 충분히 슬퍼하지 못하면 결코 그 슬픔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슬픔을 억누릅니다."(p.27)
"(...)내 고통은 저들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고통을 억누릅니다.(...)고통을 줄 세우는 시선은 뜻밖에 자기 상처를 덧나게 하고 타인의 고통에 소금을 뿌리기도 합니다. 고통에 대한 인식이 또다른 고통을 낳는 겁니다. 모든 고통은 개별적이고 주관적입니다."(p.50)
"계속해서 떠오르는 고통이 있다면 우선 거기에 마음을 써야 합니다. 그리워지면 충분히 그리워하고 울고 싶으면 충분히 울어야 합니다.(...)충분히 머물면 더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문은 필요치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본래의 무의식적 균형성, 건강성이 있습니다. 충분히 채워지면 저절로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마음의 법칙이 그렇습니다."(p.136)
엄마는 강해야 하는 거야, 아이가 아플수록 엄마가 마음을 더 굳게 먹어야지, 엄마가 되어서 이렇게 눈물이 많아서 어떡하니. 6년 전 건강하던 아이에게 병마가 찾아온 후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엄마는, 엄마니까...나 역시 한마음이면서도 때로 그 말들이 나를 가시처럼 마구 찌르곤 했다. 그런데 충분히 슬퍼해라, 슬픔과 고통을 억누르지 마라, 우선 내 고통에 마음을 써야 한다니. 그동안 명치께 쌓이고 쌓여온 슬픔과 울화가 사르르 녹는 것만 같았다. 물론 눈앞의 현실은 또 '엄마니까'이지만.
이 책의 은혜(?)를 입은 건 이 뿐만이 아니다. 손바닥점 때문에 겉으론 쿨한 척 하며 속으로 온갖 (나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중 저자가 겪은 일화가 떠올랐다. 그의 남편이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쓰러지게 되었던 것. 이 사건은 저자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내 삶의 전투에 매일처럼 참전하는 전투병이었다. 그러나 그의 심정지를 겪은 두달 전부터는 지휘관의 시선으로 나의 하루를 돌아보고 그 느낌을 매일 밤 그와 나눈다. 그 이야기의 결론은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밤마다 정리하고 작별하고 아침이면 다시 새롭게 만난다. 삶과 죽음이 홀가분하게 동거하는 삶을 사는 중이다. 그 삶은 뜻밖에도 암울하거나 우울하지 않고 사랑이 넘치고 자유롭다. 삶과 죽음이 동거하는 삶을 또렷이 인식하기 시작한 후, 나의 매일은 꽃다발 같은 시간이다."(p.9)
"삶을 제대로 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내가 제대로 살았다는 것을 조망하고 확인하는 행위다.(...)최선을 다했다는 인정, 그 모든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가 그 자체로 충분했다는 확인과 인정을 인식하는 행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거기까지 가야 온전하고 편안한 삶, 죽음에 대한 준비를 마친 삶에 다다를 수 있다.(p.6)
_그래도 잘못 살지는 않았다고, 안간힘을 쓰며 버티느라 고생했다고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 앞으로 주어진 하루와 순간을 내 최대치의 밀도로 채워 보낸다면 어떤 일이 닥쳐도 또다시 견딜 수 있을 것 아닌가. 그것으로 충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손바닥점이 별것 아닌 일로 지나가면 좋겠지만 설혹 그렇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렇게 마음먹으니 불안감이 꽤 사그라들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무기력해지려 했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평소보다 더 마음을 다해 아이와 놀고 사랑을 표현했다. 남편에게도 더 '친절하게' 대했다. 그랬더니,
정말 "뜻밖에도 암울하거나 우울하지 않고 사랑이 넘치고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