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허락된 미래], 조해진
_2022 동계 올림픽이 한창인 요즘 중계 방송에서 유독 시선을 사로잡는 게 있다. 지난 평창 동계 올림픽 경기 장면이다. 우리 선수들의 활약상보다 더 눈길이 가는 건 경기장 뒷편의 관중석을 빼곡히 채운 관객들. 약 1여년 뒤 전염병이 창궐하는 세상이 닥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응원에 열중인 그 무구한 얼굴들. 화면을 통해 비춰지는 4년 전은 어쩐지 딴 세상처럼 보인다. 팬데믹뿐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상 현상을 무력하게 바라보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어떠할지 두려움 가득한 심정으로 그려본다.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
여기 소설가 조해진이 "균열이 생기고 무너져가는 세계의 귀퉁이에서 차곡차곡 그려온 근미래 이야기" 여덟 편이 있다.
_"네 번에 세 번은 살고 한 번은 죽을지" 모르는 미래의 어느 시기에 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상황은 다양하다.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거나 화산 폭발 혹은 대지진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런 재앙이 일어날 확률은 25퍼센트, 그렇지 않을 확률은 75%. 인류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확률을 맹신하며 낙천적으로 일상을 유지하거나 진료실 밖에서 의사의 선고를 기다리는 환자처럼 불안에 잠식되는 것, 혹은 신을 절망적으로 의심하면서도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 그게 다"(p.46)인 상황에서, 당신은 어느 쪽에 삶을 맡기겠는가? 단편 <X-이경>, <X-현석>속 이야기다.
날카로우면서도 절제되어 있고 촉촉하면서도 단단한, 조해진 작가 고유의 섬세함이 가득 묻어난 작품이다. 파괴되거나 불타는 장면 하나 없이도 거대 재앙 앞에서 인간이 감각할 수 있는 극한의 감정을 숨막히도록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활자를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조이고 두근거려서 책장을 넘기는 것마저 두려울 정도였다. 나라면 어떤 확률에 운명을 걸었을까. 타고난 성정을 고려했을 때 나는 25%의 확률에 기대어 "맹렬한 허무"에 잠식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면서도 어미된 의무와 책임은 버릴 수 없어 꾸역꾸역 밥상은 차려내겠지. 그럼에도 끈질기게 이어지는 생명과 일상에 대한 소름끼치는 경외감에 사로잡힌 채로.
"X의 존재를 알게 된 뒤부터는 모든 감정이 그렇게 얕고 일시적이었다. 삶에 대한 의지랄지 죽음에의 공포로 가닿는 감정은 없었고, 먹고 씻고 치우는 일에 맞춤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으며 가끔은 왜 우는지도 모른 채 흐느꼈다."(p.29)
또 다른 이야기, <귀환>과 <종언>. 지구로부터 380킬로미터 떨어진 우주 어딘가에 있는 우주선에서 우주비행사 '은정'이 지구로 돌아갈 준비 중이다. 16년 만에, 지구에 홀로 남겨둔 아들 '수호'를 만나기 위해. 관제실과 교신이 끊어진 채 우주를 배회하는 16년 동안 지구에서는 생명체의 대부분이 대멸종에 이르게 되었다. 결정적인 사건은 없었다. 빙하와 동토가 녹으면서 메탄이 분출되고 에너지 순환이 가속화되었을 뿐. 방사능에 피폭되어 폐허가 된 도시에서 '수호'는 엄마를 기다리며 버티고 있다. '은정'은 무사히 '귀환'할 수 있을까, 아니 '종언'의 시대가 되어버린 지구로 돌아가는 것을 과연 '귀환'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정적인 사건은 없었지만 정해진(?) 절차에 의해 서서히 지구 멸망의 길에 접어드는 상세한 과정을 덤덤히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오랜 세월 자연이 보낸 엄중한 경고를 안일하게 여겨 온 인간이 맞이할 최후가 반박의 여지 없이 명확하고 참혹해서. 머지않아 우리는 망연자실한 채로 이렇게 외치고 다닐지 모른다. 정말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거야?!
_작가는 말한다.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는 실은 '허락하고 싶지 않은 미래'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락하고 싶지 않아서, 미래 세대가 현재의 과오와 남용에서 자유롭기를 바랐기에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을 한 편 한 편 완성해갈 수 있었습니다."(p.8)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도 마음이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는 자연의 무자비한 복수가 곧이라도 닥칠 것 같아서, 아니 바이러스라는 방식으로 이미 복수가 시작된 것 같아서. 문득 딸아이의 생각이 궁금해 물어보았다. "만약에 말야, 만약에 며칠 후에 지구가 멸망한다면 너는 뭘 하며 있을 것 같아?" 그랬더니 아이가 겁먹은 얼굴로 답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니까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 빨리 취소 퉤퉤퉤 해!"
'취소 퉤퉤퉤'만 하면, 작가의 말대로 "미래 세대가 현재의 과오와 남용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게 아닌지 두려움이 커지는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