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야기 좀 할까요?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_S# 1.

5월,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기 바로 전의 저녁. 보도를 따라 나무 그늘 아래를 걷던 여자의 발길이 30년 넘게 이웃으로 지낸 남자의 집 쪽으로 접어든다. 남자가 문을 열고 나타나자 여자가 입을 연다.

(약간 불안한 모습으로) "들어가 얘기 좀 해도 되겠어요?"


S# 2.

거실에 마주 앉은 남자와 여자. 밤이 내리고 있는 창밖과 주방을 천천히 둘러보던 여자가 말한다.

(짐짓 태연한 미소를 지으며) "제안을 하나 하려고요. 가끔 나하고 자러 우리 집에 올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

여자의 이야기를 들은 남자가 깜짝 놀라 묻는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뭐라고요? 무슨 뜻인지?"

여자가 대답한다.

(어깨를 조금 으쓱이며)"우리 둘 다 혼자잖아요. 혼자 된 지도 너무 오래됐어요. 벌써 몇 년째예요. 난 외로워요. 당신도 그러지 않을까 싶고요. 그래서 밤에 나를 찾아와 함께 자줄 수 있을까 하는 거죠. 이야기도 하고요. 어떻게 생각해요?"

여자를 빤히 바라보며 남자가 말한다.

(호기심과 경계심이 섞인 눈빛으로) "모르겠어요. 생각해보죠."

자리에서 일어나며 여자가 말한다.

(남자의 눈을 바라보며) "좋아요. 대신 올 거면 그날 미리 전화로 알려줘요. 연락 기다릴게요."

남자는 현관에 선 채, 길모퉁이 가로등 불빛 속에서 나무 아래를 걸어가는 중간 체구에 백발이 된 일흔 살의 여자를 바라본다. 당당하게 걷던 여자는 남자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멈춰 서 가슴에 손을 올리며 심호흡을 한다.


S# 3.

여자의 침실. 천장 등은 꺼져 있고 침대 옆 탁자 위의 램프가 켜져 있다. 잠옷 차림의 여자와 남자가 침대 위에서 손을 잡고 나란히 누워 있다. 조금 열린 창으로 선선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들어온다. 여자가 묻는다.

(남자 쪽으로 몸을 돌리며) "또 알고 싶은 건 뭐예요?"

남자도 몸을 돌려 여자를 바라보며 말한다.

(여자의 눈을 바라보며) "어디 출신인지, 어디서 자랐는지, 어린 시절에 어떤 소녀였는지,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셨는지, 형제자매는 있는지, 아들과의 관계가 어떤지, 어쩌다 우리 마을에서 살게 됐는지, 어떤 친구들이 있는지, 무엇을 믿는지, 어느 정당에 투표하는지."

여자가 살며시 미소지으며 말한다.

"이야기 재미가 쏠쏠하겠네요, 그렇죠? 나도 당신에 대해 그 모든 것을 알고 싶으니까요."


S# 4.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차 안. 운전을 하던 남자가 손을 뻗어 살며시 여자의 손을 잡는다. 창밖으로 붉은 저녁놀 아래 넓게 펼쳐진 밀밭이 빠르게 지나간다. 여자가 창문을 열자 더운 바람이 들어온다. 창턱에 턱을 괸 여자는 은빛 머리를 휘날리며 눈을 감는다.

카메라 줌 아웃되며 저녁놀 아래 달리는 차와 광활한 밀밭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S# 5, 6, 7...


_참 좋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저 좋다, 는 말은 이럴 때 쓰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 소설 리뷰는 이렇게 써보고 싶었다. 엉망진창에 어설프기 짝이 없는 시나리오(시나리오의 '시'자도 붙이기 민망하고 죄송스러운 마음ㅠ)의 형식으로.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부터 얇고 투명한 스크린이 책 위에 씌워졌다. 멋진 백발의 두 주인공에 어울리는 헐리우드 배우를 멋대로 캐스팅도 해보고, 이따금 등장하는 "마른 유머"에는 실소를 터트렸다. 칠십 년을 온몸으로 살아오며 사람과 세월과 운명을 통해 자연스럽게 터득한 그들의 용기와 지혜를 엿보며 숙연해지기도 했다.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모험심과 호기심, 설레는 마음마저 말라버리는 것은 아님을 새삼 깨달았을 땐 어쩐지 서글퍼 눈물이 났다.


"나는 그런 건 신경 안 써요. (...)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 갖지 않기로 결심했으니까요. 너무 오래, 평생을, 그렇게 살았어요. 이제 더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p.13)


"그래요, 우리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죠. 우리 나이에 이런 게 남아 있으리라는 걸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아무 변화도 흥분도 없이 모든 게 막을 내려버린 게 아니었다는, 몸도 영혼도 말라비틀어져버린 게 아니었다는 걸 말이에요."(p.159)


그리고 가장 좋았던 마지막 페이지. 또다시 어쭙잖은 신 넘버를 붙여 쓰고 싶어 나대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켰다. 애잔하면서도 귀엽고, 조금 재미있으면서 많이 슬픈, 이 결말은 아껴두는 것이 지당한 예의이므로.


_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역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넥플릭스, 2017)가 있었다. 넥플릭스 회원이 아니기에 예고편 영상만 살짝 볼 수 있었는데, 내 빈약한 상상은 물론 원작과도 조금 다른 듯 했다. 그러나 멋진 주름살과 머리색을 가진 두 주인공은 첫인상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영화로도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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