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외부가 있을까.

[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_우리는 늘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꿈꾼다. 탈출의 이유와 모습은 다양하다. 삶의 단조로움과 권태로부터의 일탈일 수 있고, 삶의 막다른 지점에 몰렸을 때 회피 수단일 수도 있다. 일탈이든 회피든 잠시나마 삶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출구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출구가 어디에 있는지는 물론이고 무엇인지조차 모르기에, 무작정 여행을 떠나거나 해오던 일을 그만두기도 하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도 한다. 이렇게 출구처럼 보이는 문을 이리 저리 기웃거리다 지칠 때쯤 문득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삶에 출구가 있는 걸까. 인생에 외부라는 게 있기는 한 것일까. 답을 구한다면 이 소설을 펼치면 된다.

_미국 뉴욕. 높고 현란한 네온사인이 몇 겹으로 펼쳐져 있고 넓은 공원에 둘러싸여 있으며 전 세계에서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이 복잡한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는 도시. 책에 수록된 네 편의 연작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지니고 이 거대한 도시에 왔다.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친구를 찾아온 '승아', 이혼과 사직 후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서 도망치듯 떠나 온 46세 '수진', 극작가를 꿈꾸며 영감과 글감을 얻기 위해 여행 온 대학원생 '현주', 작가인 아들의 출장에 여행 겸 따라 온 83세 '유정'. 세상일에 시달리고 사람에게 부대끼며 삶에 환멸을 느끼다 못해 신물이 난 이들은 무언가에 떠밀리듯 뉴욕행을 결심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일상을 위태롭게 견뎌내다 인생의 기로에서 뉴욕을 출구로 선택한 것이다. ('유정'은 이런 이유로 떠나 온 게 아니지 않나,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면 일찍 남편을 잃고 홀로 자식을 키워낸 몇십 년의 굴곡진 세월 자체가 그를 뉴욕으로 떠밀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들에겐 구체적인 목표도, 막연한 희망도 없었다. 그저 자신을 죄어오는 듯 불안정한 삶에서 이탈하고 싶었을 뿐. 뉴욕은 그들을 어떻게 맞이했을까. 그 거대하고 화려한 도시는 지리멸렬한 그들의 삶에서 기꺼이 출구 역할을 맡아주었을까.

"세네갈 시인 상고르는 몰랐지만 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문구까지 모르지는 않았따. 장미를 그 어떤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달콤한 향기는 그대로이다. 여전히 장미이다. 아버지 이야기를 끝으로 말없이 도시락을 비우고 있는 마마두에게 내가 말을 건넸다. "장미를 세네갈에서는 뭐라고 불러?"(...)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짐짓 무심한 어조로 대꾸했다. "프랑스어도 똑같아. 장미의 이름은 장미.""(p.104)

삶은 삶이고 인생은 인생일 뿐이다. 출구처럼 보이는 어느 문을 열고 나가도 그곳은 다시 삶이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 안달했던 그 삶이 또다시 시작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외부는 없다. 삶의 출구는 곧 삶의 입구가 된다. 장미를 그 어떤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여전히 장미이고, 장미의 이름은 장미이듯 말이다.

_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데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문구가 떠올랐다. 소설가 정미경의 소설,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의 일부다.

"어떤 고통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일상의 잔인한 영속성을 미옥씨에게서 보았어요.(...)산다는 건, 싸구려 픽션보다 더한 굴곡을 늘 감추고 있을 뿐이에요. 그것까지가 삶이에요."

부질없다는 걸 알면서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삶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나는 이 문구를 끄집어내 절박한 심정으로 몇번이고 곱씹는다. 정말이지 잔인하게도 영속되는 일상, 그것까지가 삶이라고 생각하면 체념 섞인 안정이 찾아 온다. 그러면 또 얼마간 버틸 만하다.

이제 또 하나의 문구를 추가해야겠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 씁쓸하고 슬픈데 한편으론 기쁘기도 한 게 어쩐지 묘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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