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는 법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팀 오브라이언
by 디디의 노블 테라피 Mar 12. 2022
_부끄럽지만 조심스럽게 고백한다. 겉모습만 보고 거의 반사적으로 껄끄러운 감정이 일어나는 사람들이 내게는 있다. 오른쪽 가슴에 새빨간 명찰이 붙은 군복을 입은 할아버지들. 그 명찰에는 '대한민국해군전우회',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등의 이름이 노란색 실로 수놓여 있다. 대개는 자의가 아닌 강제로 징집되어 참전했을 그들의 희생과 노고를 경시하거나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분명 그것과는 별개인 복잡한 감정이다. 나는 왜, 언제부터 그들에 대한 이런 즉각적인 거북한 인식을 갖게 되었을까. 그 기원을 찾기엔 부지불식간에 체득된 인식이라 아득하고, 설명하자니 일천한 깜냥인지라 어렵기만 하다.
저자는 1968년부터 1970년까지 베트남 전쟁에 징병되어 참전해야만 했다. 그는 칼리지 총학생회장을 지낸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였다. 명분 없는 이 전쟁에 나가기 싫었다. 무엇보다도 무서웠다. 그는 전쟁터에서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로부터 소집영장을 받았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당시 그의 나이 22살이었다.
_이 책은 자전적 전쟁 소설이다. 눈앞에서 총포가 오가고 지뢰가 터지고 사람이 다치고 죽고 참혹한 시체들이 나뒹구는 전쟁의 한복판을 생생하다 못해 극세밀화로 그려냈다. 그러나 세평(世評)이 그러하듯 나 역시 이 소설을 전쟁문학에 국한시키고 싶지 않다. 전쟁을 넘어 "삶과 죽음, 상처와 치유, 기억과 글쓰기"에 관한 본질적인 이야기를 넓고도 깊게 담고 있는 이 소설을 가두기엔 전쟁문학이라는 범주는 너무 좁다. 그래서일까. 군인들이 군대에서 축구를 했다는 썰을 그 누구보다도 성의 없게 흘려 들은 나였는데, 군인들이 전쟁에서 싸운 이야기가 주(主)인 이 소설을 그 어떤 때보다 더 몰입해서 읽었다. 함께 공포에 떨고 두려워했으며 함께 아파하고 괴로워했다. 군인이기 이전에 나와 같은 사람이기에, 게다가 평균 나이 19~20세의 어린 청춘이었기에, 그들의 사고방식과 심정, 행동을 뼈저리게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문득 떠오른 것이다.
먼나라 미국 군인의 참전 이야기를 읽으며 이토록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는 나는, 왜, 어쩌다가,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혹은 '대한민국해군전우회' 빨간 명찰을 단 군복 입은 우리나라 할아버지들에게 거북한 감정을 갖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이.
아직도 빨갱이 운운하는 행태를 차치하면 - 그들 역시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고 한순간에 생사가 갈리는 전쟁의 한복판에 징집된 것일 뿐일 텐데. 그들 역시 전쟁이 끝난 지 수십 년이 흐름 지금도 전쟁이라는 말만 들어도 진저리를 치며 잠을 설칠 텐데. 그들 또한 전쟁의 상처가 몸과 마음에 각인되어 평생을 떨쳐내지 못 한 채 살아왔을 텐데. 전쟁의 후유증으로 그들의 후손까지 질병과 장애로 고통을 겪고 있는데 말이다. 기껏 책이나 매체를 통해 전쟁을 읽고 보는 게 전부인 나는 온몸에 상처를 입어가며 전쟁을 통과한 그들의 사무친 통한과 비탄을 백분의 일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순간에도 처절하게 진행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 또한 나는 수박 겉 핥기식으로 공감하고 있을 뿐이다. 우크라이나인은 물론 원치 않은 전쟁에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간 어린 러시아 군인의 고통을 나는 어쩌면 영원히 오롯이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가 말했다던가. 책은 우리 안에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기 위한 도끼여야만 한다고.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나에게 도끼였다. 이 도끼가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얼어붙어 있던 '새빨간 명찰이 붙은 군복 입은 할아버지들'에 대한 내 편견의 한 구석을 깨뜨렸음을 느낀다.
_"엄마, 나 우크라이나야. 여기 진짜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나 두려워. 우리는 도시를 폭파하고 있고 심지어 민간인들을 쏘고 있어.(...)그들은 우리를 파시스트라고 불러. 엄마, 정말 힘들어."
유엔본부에서 공개한, 우크라이나 전투에서 숨진 러시아 군인이 사망 직전 자신의 어머니와 나눈 문자 메시지라고 한다. 이 짧은 메시지가 유독 가슴 깊이 박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