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수치심이라면 기꺼이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_나이가 들면서 어느샌가 내 삶의 기본값이 '되어버린' 감정이 있다. 수치심과 자괴감. 이것을 느끼지 않고 지나간 날은 단 하루도 없는 것 같다. 부끄럽지만 다음은 나의 오랜 수치심과 자괴감이다.


먼저 아이를 키우면서 몸의 일부마냥 늘 달고 다니는 자괴감이 있다. 아까 아이에게 그렇지 말하지 말 걸,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릴 걸, 난 엄마도 아니야, 라는 자괴감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자책과 함께 무시로 찾아와 스스로를 심판대에 세운다. 이런 수치심은 어떨까. 여전히 전업주부의 노동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인식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내가 전업주부임을 밝혀야 하는 땐 저절로 위축되면서 수치심이 피어오른다. 또 세상과 그 이면을 알게 되면서 생긴 수치심도 있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사건을 지켜보며 마음 깊이 안타까워하면서도 적극적인 실천을 행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떳떳하지 못해 자괴감을 느낀다. 정인이처럼 학대 받는 아이들을 위해 기부하자고 마음 먹고도 정기후원을 신청하기까지 몇 년이 걸렸고, 얼마전 발생한 산불 피해 주민을 위한 성금 금액을 결정하는 데도 몇 시간이나 걸렸다. 수입이 없는 주부인 내 형편에 어떻게 이런 것까지 해, 하면서 별 필요 없는 물건을 충동적으로 구매하고 기부할 푼돈 몇 만원을 놓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내 자신이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마지막으로 내게는 내밀한 수치심이 있다. 감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천벌을 받을 것만 같아 오랫동안 마음속으로만 꾹꾹 눌러 담은 최악의 수치심이다. 그것은 치료법 없는 극희귀난치병을 앓는 아이를 돌보는 육 년 넘는 시간 동안 목에 걸린 가시처럼 늘 나를 괴롭혀왔고 지금도 그렇다.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아이가 없었다면 내가 이토록 고통스럽진 않을 텐데, 라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들. 집 밖에서 가끔 이상 증세가 발현된 아이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빼는 와중에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그 찰나들. 엄마로서 아니 사람으로서 가져서는 안 되는 수치심이 나를 사로잡을 때면 정말이지 그만 땅속으로 꺼져 버리고 싶기만 하다. 이런 면에서 보면 나는 엄마는커녕 온전한 어른의 자격도 없는, 한참이나 부족하고 모자른 인간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에 수치심과 자괴감이 또 일어난다. 어쩌면 죽음의 자리까지 나를 쫓아올지 모를, 끊임없이 회귀하는 무수한 수치심과 자괴감들.


당신에게도 당신을 늘 따라다니는 수치심과 자괴감이 있습니까?


_[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는 바로 이런 수치심과 자괴감, 염치에 관한 이야기다. 수록된 일곱 편의 소설마다 지독하도록 끈질긴 수치심이 등장한다. 나 역시 이미 수차례 경험해 낯설지 않은 수치심이 있고, 나였더라도 충분히 느끼고도 남았을 수치심도 있다. 그리고 미처 생각이 닿지 못했으나 소설을 통해 그 깊이를 깨닫게 된 수치심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책이 우리 모두의 수치심을 티끌 하나 없이 맑고 투명한 그릇처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그 수치심의 결을 한올씩 섬세하게 집어 올려 우리 눈앞에 보여준다.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함도 물론 잊지 않았다. 일견 덤덤하고 가벼운 듯 하지만, 보이는 것 너머를 뚫어 보는 사유의 깊이가 느껴졌다. 피식, 하고 웃으면서도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상황이 자주 연출됐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수치심이라 깊이 와닿았고 여운도 오래 갔다.


"책으로, 소설로, 함께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보기엔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네.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 우리가 소설이나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라네. 이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왔다네. 진실이 눈앞에 도착했을 때, 자네는 얼마나 뻔하지 않게 행동할 수 있는가? 나는 아직 멀었다네."('이기호의 말' 일부)


_수록 작품 중 <한정희와 나>,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은 다시 읽어도 좋았고, 개인적으로는 <나정만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이 가장 인상 깊었다.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런 수치심과 자괴감을 우리 모두가 함께, 그리고 기꺼이, 느끼고 괴로워하고 고민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감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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